[소설]8월의 저편 220…몽달귀신(22)

  • 입력 2003년 1월 17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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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서는 날이었다. 성내(밀양강의 북쪽 거리)는 아침부터 북적거리다가 해가 기울자 오가는 사람들이 뜸해졌다. 배와 사과를 담은 함지박을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잰걸음으로 이씨 집 앞을 지나갔다.

“사흘 전에 딸이 태어났다 카든데”

“뭐라꼬? 내는 몰랐는데”

“달도 못 채우고, 7개월 만에 조산을 했다더라. 거 지난번에 딸이 물에 빠져 죽었다 아이가, 그 충격으로 마 조산을 했는기라”

“금줄도 안 쳐 놨네. 하기사 금줄은 부정을 막고 귀신을 쫓아낼라고 치는 거니까. 집안에 부정탄 일이 있으니…”

“우철이 어매가 눈물로 지샌다 카더라”

“아이고, 가엾어라”

“시어머니도 가엾고 며느리도 가엾제”

수군거리는 아낙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마당에서 제기차기를 하고 있던 우근의 귀에도 들렸다.

와삭 밟은 마른 잎 사이에서 귀뚜라미가 폴짝 튀어나와 우근의 고무신 코에 올라앉았다. 잡으려고 살며시 몸을 구부리자 또 폴짝 뛰어 나뭇잎 아래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발끝으로 나뭇잎을 걷어차보았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방에 온통 나뭇잎이 널려 있다. 예전 같으면 누나는 빗자루로 쓸고 나는 쓰레받기에 담았을 텐데, 누나는 죽었다. 아버지는 가게에 나가 있고 형수는 갓난아기에게 매달려 있고 형은 달리기, 엄마는 아직도 누워 있나?

우근은 고무신을 벗고 툇마루로 올랐다. 집안은 조용했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마루를 걸었다. 안방 문을 절반만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엄마”

“…아아, 우근이가”

“나, 배 고프다”

“알았다, 일어나꾸마”

희향은 몸을 일으켜 머리를 대충 손질해 비녀를 꽂고, 벽을 짚으면서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구, 어지럽어라…”

“괜찮나?”

“형수하고 아가 잔다. 조용히 해라. 엄마가 맛있는 고구마지짐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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