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19…몽달귀신(21)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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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연재 소설

8월의 저편219

몽달귀신21

잠들었겠다 싶어서 살며시 엉덩이를 드는데 아내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당신하고 결혼하길 잘 했어예.”

“…나도 그렇다.”

“…그런 일이 생겨서…그래도…당신의 아를 무사히 낳았으니…얼매나 다행인지…다행이라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예.”

“아니다, 다행이다…참말로 다행이다.”

인혜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두 손을 배로 가져갔다.

“아아, 이제는 없제. 울룩불룩하네, 이런 배를 당신한테 우째 보입니까. 내가 술.취한 사람 같네. 하지만 자고 싶지는 않아예. 잠이 들면 무서운 꿈을 꿀 거라예.” 인혜는 처음 소풍을 다녀온 초등학생처럼 조잘거렸다.

“갓난아는 벌써 잠들었다.”

“그래야지예, 조용히 해야지예, 이제는 엄마니까, 하지만, 하지만도…나는…당신이 좋습니다.”

“말이 많다, 갓난아가 깨겠다.”

“갓난아라 하지 마이소, 당신이 지어준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 아입니까.”

“쉬…, 눈 감고 입 다물어라.” 우철은 마치 보호자 같은 투로 말했고, 인혜는 그 말을 따랐다.

새근, 새근, 새근, 잠이 든 아기의 숨소리가 인혜를 꽁꽁 묶고 있던 긴장의 끈을 스르륵 풀었다. 새근, 새근, 새근…네가 무사해서 다행이다…나도 무사해서 다행이고…다른 일들은 우리 밖에서 일어난 일…지금…여기에는…아무도 없다…들리는 것은 너와 나의 숨소리뿐…다른 소리는…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미옥아…얌전하게 잘 자라…다시 눈뜰 때까지…잘 자라….

잠의 파도가 솟아올랐다 부서지면서 현실의 모든 소리를 무한히 퍼져나가는 잠의 바다로 데리고 갔다. 잠의 영해에서 인혜는 심장을 덜덜 떨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물? 물이 떨어지는 건가? 어디 구멍이 뚫려 있나 보지…어디지…안 보이는데…앞이 캄캄해…어쩌나…세숫대야나 사발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큰일이네…젖은 꼴로는 잘 수도 없고…여보…거기 있죠?…입을 벌리…고…피를…따뜻한 핏방울을…입으로…받도록…뚜-욱 뚜-욱 뚜-욱 뚝 뚝 뚝 똑 똑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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