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고래와 인간

  • 입력 2003년 1월 9일 18시 27분


새해를 맞으면 덕담을 주고받으며 아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다. “건강하십시오”, “오래 사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는 틀에 박힌 것 같아 진부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담긴 상대방의 소망을 헤아리면 마음은 따뜻해진다. 수많은 덕담에 담긴 소원대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해지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선악을 측정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연초가 가장 착한 시기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아직 새해의 기분이 남아서인지 엊그제 여러 신문에 보도된 뉴질랜드 발 외신사진의 잔영이 눈에 삼삼하다. 모래밭에 누워 입을 벌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고래들, 고래 몸에 젖은 천을 덮거나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다 붓느라 땀을 흘리는 사람들…. 멍청한 고래들이 또 집단자살을 했다고 치부하며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장면이다. 해변에 널브러져 있던 말 못하는 짐승들은 어떻게 됐을까. 위기에 빠진 고래를 살리기 위한 착한 인간들의 노력은 과연 성공했을까.

▷사진 속의 고래는 길잡이 고래(pilot whale)라는 종류로 다 자라면 길이 5m에 3t이나 되는 몸무게를 자랑한다. 그런 거물 159마리가 한꺼번에 뉴질랜드의 스튜어트 섬 해변에 떠밀려왔으니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전송될 만했다. 만조 때 해변에 올라온 고래들은 18시간이나 지나서 사람들에게 발견됐다. 뒤늦게 동물보호단체 회원과 현지주민 등 80여명이 달려들어 고래의 몸을 적시며 만조를 기다렸으나 그들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 고래는 39마리에 불과했다. 무려 120마리의 고래가 죽은 것이다. 5년 전에는 이 섬에 360마리의 고래가 상륙해 죽은 일도 있다고 하니 고래들이 스튜어트 섬을 무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래들이 무더기로 해변에 상륙해 죽는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범고래 등 더 강한 적에게 쫓기다 그렇게 된다는 설, 방향감각 이상이 원인이라는 설, 심지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집단자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이유야 어떻든 사람들은 고래의 죽음을 방치하려고 하지 않는다. 바다로 돌려보내기가 불가능해지면 고통스러워하는 고래를 보다못해 총으로 쏴 안락사시키기도 한다. 만약 고래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면 살아남은 고래들은 사력을 다해 그들을 바다로 돌려보낸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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