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94…전안례(奠雁禮) 16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7시 40분


인혜는 철이 들었을 적부터 같이 공이 놀이며 콩주머니 놀이를 하면서 논 두 살 위 언니의 손길을 느끼면서 감미로운 애틋함이 아련하게 번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하루 자고 내일 아침이면 나는 이 집 식구가 아니다. 10년, 20년이 지나 이 아이가 혼례를 치를 나이가 되면 나는 오늘 일을 떠올리며 그리워할까? 엄마는 말이다, 스무 살에 시집을 왔는데, 첫날 밤 치르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머리도 제대로 못 올렸다, 하고.

“요는 원의 크기다. 너무 작으면 비녀가 안 들어가고, 너무 크면 비녀가 감당을 못하고. 머리를 다 말아 올렸으면 비녀를 꽂아 딱 고정을 시키는 거다. 아이구, 치마를 엉덩이에 깔고 앉으면 어쩌노, 다 구겨지겠다”

인혜는 치마를 펼치고 다시 앉아 언니의 손놀림을 눈으로 쫓았다. 깊은 숲, 낙엽 쌓인 산길, 푸르스름한 빛, 큐큐 파파, 큐큐 파파, 그 사람은 달리는 숨이 편안했다고 했다. 나는 달리는 그 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약속 장소에 달려오는 그 사람의 얼굴도 좋아하지만,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면서 뛰어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은 더욱 좋다. 이제는 강가나 신사에서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없다니, 조금은 섭섭하다.

우홍이란 어떤 사람일까. 친구가 얼마 없는 그 사람이 친구라고 했으니, 굉장히 친했나 보다. 인혜는 자신이 남편의 친구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자각했다. 그 사람은 내 꿈도 꿀까? 나는 그 사람과 합방을 하고부터 늘 똑같은 꿈만 꾸는데. 나는 알몸이고. 그 사람이 알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속삭인다. 인혜, 인혜, 그 사람의 목소리가 온 피부에 스며들고, 여느 때는 의식하지 못하는 솜털 하나 하나가 다 거꾸로 서고, 온 몸 마디 마디가 찌르르 저려오고. 나는 그 사람을 호흡한다, 큐우, 파아, 큐우, 파아.

“봐라, 얼굴이 벌겋네. 열이 있는 거 아이가?” 인유는 동생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 같은 거 없다”

“그래,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알라 가지면 체온이 높아진다. 자, 다 됐다. 내일 모레부터는 시댁에서 먹고 자고 하니까, 아무리 입덧이 심해도 시어머니보다 늦게 일나면 며느리 자격 없다, 알겠나”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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