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변하지 않은 日전쟁세력

  • 입력 2002년 12월 8일 18시 43분


61년 전인 1941년 12월8일. 일본 해군 기동대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해군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은 시작됐다.

‘대동아 공영권’ 완성이라는 개전 명분이 타당했는지는 별개로 친다 해도 항공유 등 각종 물자 비축량, 전투기와 잠수함 보유 및 생산 가능량 등 전쟁수행 능력 면에서 일본은 미국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듯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킨 결과는 비참했다.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은 끝에 총성은 멎었지만 ‘업보’는 그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로부터 강탈해 오던 쌀 공급이 끊기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굶어 죽었다.

요즘 일본 분위기에는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있던 그때와 비슷한 일면이 있지 않나 싶다. 당시 일본의 양심세력은 암살과 테러를 일삼는 우익세력과 정치 경제의 모든 실권을 장악한 군부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대만 점령과 조선 병합, 만주사변과 남경대학살 등 침략이 이어지는 동안 양심적 소수의 저항은 미약했다.

세월은 지나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일제 침략의 상징이었던 일장기(히노마루)는 국기로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규정한 ‘평화 헌법’마저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대 이라크공격 준비를 돕기 위해 해상자위대 소속 최신예 함정인 이지스함까지 파견하기로 했다. 유사시 이라크 주변에 거주하거나 체류 중인 일본국민을 제때 철수시키기 위해 항공자위대 소속 항공기를 파견하는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그나마 당시에 비하면 요즘은 조금은 낫다고 할 만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7일 도쿄에선 언론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작은 모임이 있었다. ‘일본 저널리스트회’가 주최한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6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전쟁광의 말에 다시는 속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언론의 견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이런 목소리들이 더 커지기를 기대해 본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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