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성공단이 핵문제보다 급한가

  • 입력 2002년 11월 3일 18시 17분


주말에 동시다발로 진행된 남북협상을 보면 우리 정부가 과연 올바른 현실인식을 갖고 북한을 대하고 있는지 새삼 의심하게 된다.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 문제에선 일사천리로 합의에 도달한 반면 이산가족 및 납북자 문제를 다룬 적십자 실무회담과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공동조사 협상은 결렬됐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만 합의해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얻어내지 못한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핵 문제로 조성된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내달부터 개성공단을 착공하겠다고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개성공단은 우리가 북한에 주는 ‘당근’이라는 점에서 이번 일은 우리의 협상카드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핵무기를 쥐고 협박하는 북한에 대규모 공단을 지어 주겠다는 ‘발상’은 요즘의 국민적 정서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임기 막바지에 다다른 정권이 파급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경협사업을 새로 시작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정치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에 대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다 소진해버려 차기 정권의 입지를 좁혀 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북한에 무슨 약점 잡힐 일이 그렇게 많아 임기 말까지 서둘러 다 주고 떠나려는지 궁금하다.

국제사회는 지금 북한에 대한 핵 포기 압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대북 경수로사업 지원금에 대한 승인을 보류했고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도 엊그제 “핵 포기 전에 북-미(北-美) 대화 가능성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부만 혼자 경협에 나서는 것은 국제공조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크다.

정부는 2일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회의에서 ‘북한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러나 정부가 개성공단을 약속해주는 식의 대북 인식과 태도를 견지하면서 선언적으로만 핵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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