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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7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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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흔히 자메이카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927년 미국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서인도제도 출신이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일찍 아내와 자식을 버렸고, 어머니가 그를 아홉살 때 아버지의 고향인 자메이카로 보내는 바람에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메이카는 스페인, 영국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1830년대에 서인도제도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무려 40만명의 흑인 노예가 매매된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서인도 제도 흑인 민중의 삶을 다룬 많은 노래들을 내놓은 그의 음악적 영감이 이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물론이다. 그가 60년대부터 흑인인권운동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해 마틴 루터 킹에 비견될 정도의 명성을 쌓은 것도 유년시절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유엔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약하고 있기도 한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메이카에 뿌리를 둔 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을 주인에게 충실히 봉사하던 흑인 노예에 빗대어 비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시한 것이다. 8일 샌디에이고의 한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노예제도 시절 정확히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 노예는 농장의 집안에 들어가서 살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로 흑인으로서 보수정권인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된 파월 장관을 비꼬았던 것이다.
▷국무부가 발끈했고 파월 장관도 “노예에 대한 언급은 불행한 일이며 다른 때, 다른 장소로의 후퇴”라며 “해리는 그런 말을 사용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벨라폰테는 물러서지 않았다. 15일 CNN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그는 한술 더 떠 파월 장관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 개입 등 부시 대통령의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정책’들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또다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가뜩이나 국내외에서 대 이라크 정책에 대한 거센 반발과 비난에 시달려온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이 노가수로 인해 또 다른 곤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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