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조작 폭로로 추방됐던 시노트신부 내한

  • 입력 2002년 10월 15일 22시 35분


“여러분들의 얼굴을 기억해요.”

15일 오후 5시경 서울 중구 태평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朴炯圭) 대회의실. 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내한한 벽안의 짐 시노트 신부(73·미국·사진)는 자기 앞에 앉은 인혁당 사건 당시 사형당한 8명의 고인의 나이든 부인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노트 신부는 1974년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가 정부에 의해 추방됐던 인물. 94년 한국을 찾은 적이 있으나 이번 방문은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인혁당 사건이 정부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발표한 뒤여서 그의 감회는 더욱 컸다.

시노트 신부는 이날 간간이 우리말이 섞인 영어로 인혁당 사건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거리에서 경찰들에 맞서 싸우던 이 여성들이 나를 감동, 고무시켰지요. 이분들의 ‘입’이 되어 전국을 돌며 이들의 남편들이 어떻게 고문받고 혐의가 조작됐는지를 얘기했습니다.”

그는 또 “내 생애 최악의 날은 75년 4월 9일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형된 날이었다”며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일부 밝혔으나 앞으로는 억울하게 숨진 그들과 가족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추방된 뒤 시노트 신부는 라디오에서 장준하 선생이 등반 도중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신정권에 의해 뭔가 또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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