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병풍문건'도 수사하라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8시 19분


일부 언론이 보도한 민주당 내부보고서 형식의 ‘병풍문건’ 내용이 섬뜩하다. ‘이회창은 11월까지 절대 살려둬야 한다’든지 ‘서울지검장을 확실한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정치공작의 악취를 물씬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성한 주권 행사인 대통령선거나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할 검찰수사를 아직도 공작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작성자의 빗나간 의식에 생각이 미치면 대선 이후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더욱 섬뜩한 것은 올 8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 이 문건의 시나리오가 실제 병풍수사나 그와 관련한 정치공세의 진행과정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이다. 문건의 제목이 ‘김대업 면담 보고서’라고 돼 있는 것도 흘려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 의혹을 집요하게 쟁점화해 온 김대업씨가 정치권과 접촉한 게 사실이라면 병풍수사의 성격과 방향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건에 대해 한나라당은 민주당쪽에서 생산된 문서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병풍수사는 추악한 사기극임이 극명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우리가 만든 문건이 아니다”며 오히려 한나라당 쪽의 자작극설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가 어지러울 때면 여의도 주변에 나돌곤 하는 출처미상의 문건들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반드시 비열하고 추악한 정치적 목적과 동기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정치공방으로 출처나 진위가 확인된 적은 없다.

검찰이 나서야 한다. 병풍문건의 내용대로 검찰이 결과적으로 정치공작에 춤을 춘 것이라면 그에 따른 치명적인 대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사실 그동안 병풍수사와 관련해서는 정치권이나 검찰 어느 쪽도 대응에 순수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의혹과 불신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문건의 작성자와 작성경위를 밝혀낼 의무가 있다. 그것이 병풍의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접근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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