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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9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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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는 고구려 멸망 이후 폐허처럼 버려져 있었다. 패망한 나라의 문화 유적이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는 것은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근대사 기록에 고구려 벽화가 등장하는 것은 평안도 강서군에 위치한 강서대묘가 처음이다. 1906년 강서군수 이우영과 일행이 벽화를 시찰하기 위해 이 무덤을 찾았을 때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른 벽화에선 후대 사람들이 써넣은 낙서도 발견됐다. 1907년 프랑스 고고학자 샤반이 벽화를 답사한 뒤 학계에 보고하면서 고구려 벽화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최근 북한에서 새로 발견된 고구려 벽화가 다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황해도 연탄군에서 발굴된 이 벽화에는 당시 고구려인의 얼굴이 또렷이 살아있고 개 호랑이도 비교적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고분 벽화에는 그 시대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내세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벽화에 등장하는 개와 호랑이는 죽은 자를 보호해 영혼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게 당시의 보편적 믿음이었다. 이 벽화가 기나긴 세월을 견디고 현대인과 다시 조우한 것은 경이롭다. 화가가 아무리 질 좋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해도 종이 수명 때문에 1000년 이상 보존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돌가루를 이용해 정교한 기술로 그린 벽화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벽화가 발굴 당시 옥수수밭에 방치되어 있었던 점이다. 북한은 문화재 보호에 적극적이라고 알려졌으나 이 사례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학계에 따르면 남포의 약수리 고분은 저수지 물이 유입되어 보존대책이 시급하고 평양 동암리 고분의 일부 벽화는 뜯겨져 국외에 유출됐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민족적 문화 유산의 훼손을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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