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궁영/기업간 교류 늘려라

  • 입력 2002년 9월 23일 19시 23분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 도시인 평북 신의주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경제특구 전략은 주로 개발도상국가에서 운영되었던 경제정책이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중국, 러시아, 동유럽,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수단으로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1991년 12월 나진-선봉지구를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했으나 나진-선봉지구는 경제특구로서 기대만큼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의주 경제특구는 지나치게 외진 곳에 조성된 나진-선봉지구보다는 입지 조건상 유리한 점이 많다. 더욱이 남북의 경의선 철도 연결이 실제 이루어진 후 신의주 경제특구는 남한의 기술 자본과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연결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입지적 문제보다 국제사회의 불신과 경직된 체제 때문이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즉 나진-선봉 경제특구 정책이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위한 개혁 개방이 아닌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미봉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강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신의주 경제특구는 나진-선봉과 구별되는 추가적 조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특구처럼 국가경제를 시장경제화하려는 과도기적 ‘실험장’이기보다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국가경제를 견지하는 한편 이를 유지하기 위한 ‘배후지’의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에 독자적 입법 행정 사법권이 부여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특구가 자율적이고도 독자적으로 운영될지는 의문이고, 설혹 자율성을 갖는다 해도 이것을 북한 경제의 자본주의화와 연결짓기는 매우 어렵다.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 북-일 정상회담, 남북관계의 일련의 진전 등 북한이 최근 취한 일련의 일들은 모두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대한 후속조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7월 배급제 폐지, 임금 및 물가 인상, 환율 인상(달러당 북한 화폐 2.2원에서 150원으로 변동) 등의 개선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지속되는 경제난으로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경제의 회복을 위해 나름대로 내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필품의 가격을 농민시장 가격으로 올리고 환율을 인상함으로써 자본을 비공식 부문에서 공식 부문으로 동원하는 한편 임금을 인상해 노동 인센티브를 강화함으로써 노동력의 추가적인 동원 효과를 얻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조치들의 성과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필요한 물품들을 얼마나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도 이를 통한 외자유치와 물자공급의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일 정상회담의 목적도 크게는 ‘악의 축’의 한 국가인 북한이 일본을 통해 미국에 화해제스처를 보냄으로써 안보위기에서 벗어나는 것과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장단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지원을 받는 데 있다.

앞으로 북한은 대외경제관계를 확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의 입장에서 안보위기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유지되는 한 북한의 경제특구 정책은 성과를 얻기 어렵다. 국제경제기구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 데도 미국의 거부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의 주요 관심 이슈인 대량살상무기, 장거리미사일, 재래식 무기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성의 있는 대응이 없는 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북한은 대남 관계에서도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북한은 8월의 제2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등에 합의했다. 남북경제관계에서 유의할 점은 상호인정 상호존중의 원칙 하에 인도적 지원, 당국간 경제협력, 민간기업간 경제협력으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인도적 지원은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당국간 경제협력은 상호주의에 따라 정책적 목표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셋째, 민간기업간 경제협력은 남북경제관계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민간기업간 경제협력은 자율화 활성화되어야 한다.

차후 남북 관계에 진전이 있을수록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정책 선택은 그 중요성을 더해 갈 것이다. 북한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차분한 정책추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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