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장애인의 사랑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24분


우리의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다면 우리 영화 ‘오아시스’는 마음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는 몸은 정상인데도 마음은 비정상인 ‘홍경래의 18대손’ 홍종두(설경구)와 몸은 비정상이지만 마음은 멀쩡한 한공주(문소리)의 사랑을 그렸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두 사람은 모두 뇌에 이상이 생긴 환자일 따름이다.

종두는 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천둥벌거숭이. 형으로부터 “어른이 돼라”고 꾸지람을 듣곤 한다. 종두의 행동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전형적 증세다. 이 병은 범죄자에게 많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전되곤 하는데 이 점도 종두에게 해당한다. 이 병은 뇌 이마엽(전두엽)의 문제가 원인이다.

공주의 병, 뇌성마비는 뇌의 여러 부위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난다. 뇌성마비는 모두 선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80%는 태아 때 엄마의 스트레스, 약물 복용, 자궁 출혈, 감염 등 수많은 선천적 이유 때문에, 20%는 출산때나 사고로 인한 뇌 손상과 감염 등 후천적 원인 때문에 생긴다.

이들 환자는 뇌의 손상 부위에 따라 정신 지체, 언어 장애, 시각 장애, 경기(驚氣) 등 다양한 증세가 나타나는데 모두 운동장애란 공통 증세를 갖고 있다.

어릴적 가급적 일찍 재활치료를 받고 꾸준히 재활 운동을 하면 각종 장애가 덜 심각해 진다. 영화에서 공주는 집안 형편 때문에 재활 치료를 제대로 못받아 근육이 더 뒤틀려 굳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종두와 공주의 베드 신인 듯한데 뇌성마비 환자도 80% 이상 성행위가 가능하다.

중증 장애인은 대부분 성행위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뇌성마비 뿐 아니라 척수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성행위가 가능하다. 남성 척수장애인은 15∼30%가 정상 성교가 가능하며 성행위가 안될 경우에도 70%는 비아그라나 유프리마 같은 약을 먹어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여성 척수장애인은 거의 모두 성생활이 가능하고 임신 성공률도 건강한 사람과 비슷하다.

척수장애인이나 뇌성마비 환자나 성행위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오르가슴도 느낀다. 공주도 종두와의 성행위 중 오빠 내외가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오르가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 중에는 “이 영화가 애인이 자신을 범한 강간범으로 몰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나 비질을 하면서 하염없이 애인을 기다리는 것 등 장애인을 너무 나약하고 수동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리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사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모호하다. 영화에서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종두와 공주보다는 주위 사람에게 장애가 더 많다. 그래서 둘의 사랑은 현실이라는 사막(砂漠) 속의 ‘오아시스’인 것이다.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