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공자금 관리는 못해놓고…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55분


‘공적자금’이란 얘기만 나와도 국민이 머리를 흔들던 2000년 12월. 정부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라는 민간조직을 만들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국민의 혈세(血稅)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부실기업정리에 헤프게 썼다는 비난이 비등하자 ‘관치(官治)금융’ 논란을 없애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이런 취지에 따라 위원장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출신에게 맡겼다.

물론 이 위원회가 생긴 뒤에도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결국 정부의 정책결정에 ‘들러리’에 그칠 것이란 의구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청와대와 정부는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일정도 공개하지 않은 채 열려온 경제장관 간담회가 세간의 의심대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제쳐둔 채 공적자금 투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관치 행태’를 계속해 왔음이 국정감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그것도 공적자금의 집행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팀장이 국감자료용으로 제출한 ‘금감위 지시사항’이라는 대외비 문서를 통해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이 자료는 올해 4월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자산관리공사가 갖고 있던 대우자동차 해외법인 채권 4900만달러(약 583억원)를 공적자금 손실로 처리하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 결정사항이 금감위 지시형태로 하달돼 자산관리공사의 집행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무기관인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경제장관 간담회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또 이를 받아 금감위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자산관리공사가 이 자료를 국회에 내놓은 직원에게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사실이다. 주무기관을 제쳐놓고 비밀회의를 열어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한 장관들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국감자료로 제출한 자산관리공사 간부 중 누구의 잘못이 더 무거운 것인지 따져볼 일이다.

최영해기자 정치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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