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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8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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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직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미국이 2003년 말까지 5000억달러(약 600조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1년치 국내총생산(GDP)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미국 민간경제연구소 WRI-WEFA는 2001년 세계총생산(32조3000억달러 규모) 성장률이 2.0%에서 1.5%로 떨어질 것으로 보았다. 세계적으로 약 1600억달러(약 192조원)의 손실을 예상한 것이다.
그후 6개월이 지난 올 초부터 연구소나 단체들이 “충격 초기엔 과장되기 쉽다”면서 “피해는 초기 전망보다 훨씬 적었다”고 수정했다. OECD는 작년 12월 올해의 세계 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가 올 8월엔 2.8%로 높였다. GDP 성장률로 보면 미국은 작년 1∼9월 경기침체를 겪다가 테러 직후인 10월부터 회복됐다.
▼9·11테러의 경제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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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등 숙련 인력 사망
△건물 붕괴에 따른 재산 피해
△항공 여행 관광업계 영업 타격
△고용 감소, 실업자 증가
△보험료 상승, 안전비용 상승
△소비자 신뢰 하락 및 불확실성 증대
△세계 투자 및 교역 위축 심화
△방위비 확대에 따른 자원배분 비효율화
△개별국가의 거시경제 정책 변화
△미국 폐쇄성 심화
미국 정부가 금리인하 및 재정지출확대 등 경기부양책을 신속하게 동원해 충격 확산을 막았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긍정평가하고 있다.
올 들어 성장세 감퇴로 더블 딥(경기회복기에 다시 침체가 나타나는 양상) 우려가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카네기평화재단 제시카 매튜스 이사장은 “경제가 이처럼 상처를 받은 데는 오사마 빈 라덴보다 케네스 레이(엔론 전 회장), 버니 에버스(월드컴 전 회장)와 그들의 회사에 더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7월 말 CNN과 USA투데이, 갤럽이 여론조사한 결과 현재 경제상황을 낳은 원인(중복응답)으로 ‘9·11테러’(72%)보다는 ‘기업의 탐욕과 부패’(77%)가 더 많이 꼽혔다.
미국 내 산업별 도시별 경제적 충격을 점검해온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소재 밀켄연구소의 로스 데볼 이사(지역연구 담당)는 “9·11에 따른 올해 고용감소가 총 74만4400명에 이를 것으로 1월 중 예측했으나 상반기 실적을 점검한 결과 감소폭이 67만3100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대테러전쟁이 미국측의 큰 피해 없이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돼 소비자심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금리를 계속 내린 데다 테러 직후 자동차업계가 과감하게 무이자 할부판매에 나서 소비지출이 위축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테러의 충격이 가장 컸던 여행관광업계에선 급격히 줄었던 항공기 여행객은 작년의 85∼90%, 외국인 방문객은 75∼80% 선까지 회복된 상태다. 작년 세계 관광매출도 전년보다 2.6% 감소하고 세계 전체 여행객은 0.6% 줄어드는 데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밀켄연구소는 1월 항공업계에서 9·11의 영향으로 8만5900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7만6800개로 낮춰 잡았다.
다만 추가테러 경고가 이어지면서 테마파크를 찾는 사람이 급감해 이 분야의 피해는 당초 예상보다 더 클 것으로 예측됐다.
▼광범위한 간접피해▼
단기적 직접적 경제충격은 예상만큼 크지 않았지만 속병이 든 것처럼 중장기적 간접적 충격이 세계경제를 한동안 짓누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 보고서에서 “9·11의 직접적인 피해는 1995년 일본 고베 지진보다 적지만 간접 피해는 이보다 크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의 경우 테러가 초래한 피해는 402억달러(AP통신 자료)로 사상 최대. 그런데도 미국 보험업계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유럽 보험회사에 재보험을 들어두어 손해를 분담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업계가 떠안은 충격은 보험료 인상, 테러공격 가능성이 있는 건물에 대한 보험가입 거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OECD 이코노미스트 빈센트 코언은 지적했다.
또 어느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긴 줄은 육상 및 해상운송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50만명, 19억달러어치의 수출입 물품이 드나드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특히 자동차부품 운송이 더뎌지는 바람에 조립라인 전체가 멈추는 상황도 빚어져 양국이 서로 신뢰하는 화물봉인용 스티커 개발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테러 예방을 구실로 외국인 입국을 꺼리는 나라가 늘어나는 것도 9·11이 남긴 비용이다. 미국 경제전략연구소 연구원 피터 모리치는 “테러 응징은 다 하지 못한 채 미국이 국토를 빙 둘러 담을 쌓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력 상품의 이동이 제한을 받게 되고 비용이 더 들게 되는 것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테러리즘이 세계화에 세금을 매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수출입이나 국제투자, 자본이동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외에 9·11로 인해 더 위축되지는 않았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진단하고 있다.
심리적 충격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 NBP은행의 이코노미스트 마르 투아티는 “9·11은 우리에게 ‘안전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어떤 참극도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지적이다. 테러 직후 도널드 존스턴 OECD 사무총장은 유럽의회에서 이렇게 보고했다. ‘테러의 타깃은 미국이었지만 그 충격은 세계 어디서나 느낀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유가불안 세계경제 발목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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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가 세계경제에 주는 충격 가운데 ‘최악’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국제유가다.”(로이터통신)
중동에 전운이 감돌면서 유가 급등의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對) 이라크 공격에 앞서 “의회의 승인을 받겠다”고 밝히고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등 속속 개전 절차를 밟아가면서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5일에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습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 유가를 좌우하는 북해산 브렌트유(10월물)와 미국 유가의 기준이 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6일 각각 런던과 뉴욕 시장에서 2% 이상 올라 배럴당 28.28달러 및 29.61달러에 장을 마쳤다. WTI는 한때 30.19달러까지 올랐었다.
현재 세계경제 침체로 원유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원유가가 걸프전쟁 때처럼 배럴당 40달러까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각료회담에서 증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며 설혹 증산에 합의하더라도 산유국들은 증산 여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쟁이 날 경우 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MSNBC TV는 “미국에서 최근 네 차례의 경기침체 때나 그 직전에 항상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MSNBC는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 얀 하치우스의 말을 인용해 “미국 경제의 원유의존도가 낮아지긴 했으나 유가 상승은 여전히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서사(社) 대표 조엘 프라켄은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일본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환율이 내림세(원화 및 엔화 강세)를 보이고 있어 유가 상승 충격이 덜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시아 경제는 원유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미국의 소비둔화에 따른 수출 타격 때문에 충격이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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