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김영훈/변화 감별사만이 살아남는다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35분


요즘 신문을 보면 미국식 경영이 뭇매를 맞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세계경제의 모범생 대접을 받던 미국이다. 경기 사이클이 사라졌느니, 경제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느니 떠들어대던 걸 생각하면 허망하기까지 하다.

미국식 경영 이전에는 일본식 경영이 있었다. 1980년대 전 세계의 극찬을 한 몸에 받던 일본식 경영에는 이제 실패의 낙인만 선명하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 때 한국도 같은 일을 겪었다. 경제개발의 우등생이던 한국은 하루아침에 정실 자본주의가 낳은 패륜아 취급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들 3개국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장기간의 유례 없는 경제성공이 막을 내리자 속에서 곪았던 종기가 추한 경제 스캔들로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고이면 썩는다. 장밋빛 낙관과 성공이 오래 머무른 자리에는 어김없이 모럴 해저드가 싹트게 돼 있다. 그 상처 속에서 또 성공이 피어난다.

중요한 것은 미국식 경영이냐, 일본식 경영이냐가 아니다. 변화를 제대로 포착해 제때 변신하느냐가 중요하다. 핵심역량(core competency)도 시간이 흐르면 핵심패인(敗因)으로 고착화돼 발목을 잡는다.

국가건 기업이건 마찬가지다. 경쟁력을 유지하자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핵심역량을 스스로 파괴할 정도로 냉철한 변화의 관리능력이 필요하다. 시장 흐름을 관찰하면서 변화의 시점, 변곡점을 포착해야 한다. 오죽하면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은 “편집광(paranoid)만이 살아 남는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썼겠는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미국식 경영의 교조주의가 풍미했다. 벤처육성, 주주 중심 경영, 철저한 능력주의….

업종전문화도 그중 하나였다. 다각화는 무조건 사회악인 양 취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좋은 경영이란 전문화와 다각화 중 양자택일하듯 단순하고 정태적이지 않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다각화의 칼을, 때로는 전문화의 방패를 적절히 휘두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너지를 낼 수 있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다각화가 나쁠 이유는 없다. 시장이 급변하는 21세기에는 효율적인 사업다각화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 보고서도 있다.

벤처붐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날 붕괴돼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성공의 불씨가 남아 있다. 그 불씨를 잘 살려 새로운 불꽃을 일으키면 된다. 그 불씨가 바로 인체 생물학(Human Biology), 생명공학(Life Science)이라고 생각한다. ‘메가트렌드(Megatrends)’라는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박사의 예언처럼 앞으로는 인간과 결합된 기술이 첨단기술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한 사람은 시류보다 한발 앞서 변화를 찾아냈다. 대중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소수게임을 펼친 선각자들이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서구를 모방한 끝에 일본식 경영을 창조했고, 80년대 위기에 선 미국기업들은 일본식 품질 및 생산성 향상을 맹렬히 학습한 덕에 경쟁력을 회복했다. 미국식 경영이 정답인 듯 열광하다가 곧 망할 것처럼 흥분하는 냄비근성으로는 알맹이를 놓친다. 지금의 성공 속에서 실패를 통찰하고 현재의 실패에서 성공의 불씨를 찾아내는 변화의 감별사만이 살아 남는 시대다.

김영훈 대성그룹 글로벌에너지네트웍 회장 david@daesung.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