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강은교 시집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9분


여기저기서 출렁이는 은빛 소리를 듣고 노래하는 시인 강은교.사진제공 문학사상사

여기저기서 출렁이는 은빛 소리를 듣고 노래하는 시인 강은교.사진제공 문학사상사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 강은교 지음 / 110쪽 5000원 문학사상사

도시는 소리를 추방했다. 소리가 떠나면서 침묵도 자취를 감추었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깊어지던 침묵.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스며 나오던 사람의 소리, 생명의 소리, 자연의 소리. 그 소리들은 이제 없다. 소리가 있던 자리에 소음, 예컨대 잡음, 굉음, 기계음, 전자음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도시는 ‘소음이 소음을 살해하는 골짜기’다.

강은교의 신작시집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는 시간의 주머니에서 나는 은빛 별의 소리로 가득하다. 그 은빛 별은, 자잘한 사물과 작은 생명의 은유이다. 은빛 별이 내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은 기계음과 전자음 사이로 겨우겨우 틈을 내며 인간의 귀, 열린 귀를 찾는다.

강은교 시인이 그려놓은 소리의 지도는 사실 감각의 지도다.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고 물이 찰과상을 입으며 내는 소리라는 시 ‘물길의 소리’도 결국에는 촉감으로 귀결된다. 바위를 넘어가고, 바람에 저항하는 물의 소리는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이고,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이며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이기도 하다. 청각은 시각과 동행하며 촉각의 품에 안긴다.

시인의 귀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집음기다. 오이가 하는 말소리며, 무지개가 달려와 감기는 소리, 시간의 소리, 햇빛의 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소리가 소리를 살해하는’ 소리(모습)까지 듣는다(본다). 하지만 시각과 겹쳐지는 청각은 촉각에 압도당한다. 쓰다듬고, 비비고, 찔러대고, 붙들고, 뻗치고, 만지고, 주워담고, 밀고, 벗기고, 씻고, (기타를) 켜고, (편지를) 쓰고, 잡고, 삿대질을 하고, (한 줌) 주고, 누르고… 시집 ‘시간은…’는 가위 촉감의 제국이다.

‘시간은…’에 대한 오독(모든 읽기는 오독이라는 말도 있다)이 허용된다면, 이번 시집의 주제는 감각을 복원하려는 안간힘이다. 대량 소비사회는 도시인의 감각을 극도로 왜곡시켰다. 시각을 필두로 하여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기능을 한쪽으로 축소, 집중시켰다. 시각을 보자. 이제 도시인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 아니 (누군가) 보여주는 것을 볼 따름이다. 텔레비전 화면은 전광판과 컴퓨터 모니터, 휴대 전화의 액정 화면으로 확대되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축구 중계를 보았다! 도시인이 아닌 자연인의 눈은 눈 둘 곳을 몰라하고 있다. 각종 매체(도시 자체가 매체라는 견해도 있다)와 광고에게 시각을 빼앗긴 도시인은 소비자로 전락해 있다.

강은교 시인은 시 ‘까페 오디시아’에서,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대’에게 이렇게 답한다. ‘사랑하여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사랑하여라,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까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때,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 감각은 복원될 것인데, 난감하여라, 감각을 되찾는 일은 이미 문명사적 과제가 되고 말았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대량 폐기를 반복하는 이 문명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감각을 복원하는 길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문재 (시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