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람잡기, 사랑잡기 ´유혹의 기술´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9분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화 ‘아담과 이브’. 사진제공 이마고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화 ‘아담과 이브’. 사진제공 이마고
◇유혹의 기술/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672쪽 2만8000원 이마고

여자를 유혹하려면 비 오는 날이 좋을까, 맑은 날이 좋을까? 예상과는 달리, 정답은 ‘맑은 날’이다. 비는 이미 그 자체가 여성의 감성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유혹의 말도 지루하게 들릴 뿐이다. 정장 차림의 여성과 간편복 차림의 여성 가운데 어느 쪽이 유혹에 약할까? 당연히 ‘정장 차림’이다. 그 중에서도 최신 유행 패션으로 치장한 여성은 남성에게 ‘내게 말 좀 걸어 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영화관이나 콘서트장, 축제나 파티야말로 여성이 자신을 열고 환상을 받아들이려 기다리는 장소다. 그러한 곳에서 ‘치뜬 눈을 반짝이는’ 여성을 목표로 한다면 성공의 확률이 높다. 상대방에 대한 접근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두어 명이 연합하면 장난이나 희롱으로 비칠 뿐이다. 또한 25세 이상의 여성은 분별력과 자존심이 형성된 뒤라서 거리에서 유혹할 대상이 못된다. 거리에서라면 오후 4∼7시, 25세 미만의 여성을 상대로 부드러운 목소리와 신념에 찬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본래 유혹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리적인 힘을 가진 남성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그들의 유일한 약점인 만족할 줄 모르는 성적 욕구에 대한 여성의 책략으로서 유혹의 가치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는 남녀를 막론하고 자신의 욕망을 차지하기 위한 최고의 세련된 방법으로 ‘유혹’을 일상화하고 있다. 이성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선거 전략이나 기업의 광고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에서 유혹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최상의 소통방식이다.

그러한 ‘유혹’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저술이 바로 로버트 그린의 베스트 셀러 ‘유혹의 기술’이다. 저자가 13년에 걸친 다양한 자료조사와 집필을 통해 완성한 이 매혹적인 저술은 그야말로 진지한 자세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유혹의 기술’은 즐기는 책이다. 아주 재미있기 때문에 즐기듯이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유혹의 본질과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그 어떠한 책략과 연기보다도 중요한 유혹의 기술이야말로 ‘정직’과 ‘신념’과 ‘모험심’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9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 유혹자들 28명 중에는 카사노바와 루 살로메와 같은 희대의 연인이 있는가 하면, 레닌과 주은래와 같은 정치인, 크리슈나무르티와 같은 종교인, 프로이트와 같은 학자, 말콤 엑스와 같은 사회운동가도 있다.

그 중에서 존 F 케네디는 대중의 귀속의식을 자극하는 신화를 창출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지 일 주일 뒤 재클린은 “케네디의 삶은 정치이론보다는 신화, 마법, 전설, 영웅담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케네디는 공화당 후보인 현직 부통령 리처드 닉슨과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한판 승부를 벌였다. 닉슨은 정확하고 침착한 태도로 답변에 임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이전 어떤 정치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갔다. 닉슨은 자료를 들이대며 자질구레한 논점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케네디는 자유와 새로운 사회건설을 언급하면서 미국인의 개척정신에 호소했다. 그의 태도는 매우 진지하고 힘있어 보였다. 그의 말은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미국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와 같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환상적인 이미지로 상대방을 유혹하는 유형은 ‘스타형’으로 분류된다.

저자는 ‘스타형’과 비교되는 유형으로 ‘카리스마형’을 꼽고 있는데 넘치는 자신감과 강력한 흡인력으로 대중을 유혹하는 프랑스 대통령 드골과 같은 사람이다.

196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우익 프랑스 군인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목적은 알제리에 자치권을 주려는 드골의 정책을 무산하려는 데 있었다. 당시 75세였던 드골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입던 군복을 입고 국영 텔레비전 방송에 나타났다. 그는 침착하고 자신감에 찬 어조로 알제리 폭동이 해방의 정신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1940년에 했던 유명한 연설 끝 부분을 다시 인용하여 연설을 마무리했다.

“다시 한 번 나는 모든 프랑스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조국 프랑스를 위해 뭉칩시다.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

침착한 태도로 연설을 하다가도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거나 우스갯소리를 한두 마디 던지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는 군복이나 무대배경과 같은 시각효과로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한편, 마치 잔 다르크처럼 ‘프랑스 만세’와 같은 선동적 어휘를 동원했다. 그의 연기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유혹의 기술’ 권말에 부록으로 실린 ‘대중을 사로잡는 법’에는 사례를 들어 유혹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영화 역사상 가장 탁월한 홍보 활동가인 해리 라이헨바흐의 신출귀몰한 흥행 방법이 소개돼 있는가 하면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홍보에 관한 일화도 있다. 앤드루 잭슨과 도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 선거 이벤트도 재미있는 교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어떠한 유혹자도 전략과 연기로 소화해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확고한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모세 이후 모든 카리스마가 지녔던 핵심적인 자질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수의 남자들은 만만한 상대에겐 여유와 냉정을 유지하는 반면, 자신의 이상형이 나타나면 꼬리를 내리고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덜덜 떨기보다는 뻔뻔스러움이 오히려 유리한 태도다. 사랑은 마술적으로 이루어지는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으로 얻어지는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부터 유혹할 필요가 있다. 원제 ‘The art of seduction’(2001).

심상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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