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스테디셀러]´전태일 평전´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3분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320쪽 6300원 돌베개

“…꼭 돌아가야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스물두살의 나이에 자신의 몸을 불살라 버렸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하지만 그는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으로 여전히 살아 숨쉰다.

1983년 초판 당시 제목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특히 저자는 ‘전태일 기념관 건립위원회’로 나와있어 누가 썼는지 베일에 가려 있었다. 이에 앞서 78년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살라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을 당시에도 ‘김영기’라는 가명이었다.

1991년 개정판 때 저자가 조영래(趙英來·1947∼1990) 변호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그는 이미 폐암으로 세상을 뜬 상태였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를 받던 74년부터 2년간 골방에서 이 책을 썼다. 전태일의 짧지만 의미있는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돌베개 측은 “군사정권 당시 ‘판매금지 조치’로 비공식 발간하는 등 정확한 판매수치를 알 수 없지만 30만부가 넘게 팔렸다”며 “지난해 두 번째 개정판에서 전태일 연보와 관련사진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1948년 8월26일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초등학교도 중도에 포기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두닦이 신문팔이 우산장사 등을 가리지 않았다. 평화시장의 재단사가 되기까지 밑바닥 일들을 숱하게 거쳤지만 순수하고 맑은 청년이었다.

하루 16시간 넘게 일하면서 그가 받은 일당은 당시 커피 한 잔 값인 50원. 그는 숨쉬기조차 어려운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어린 시다’들을 바라보며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비록 세상을 떴지만 그의 꿈은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국내 경제 상황은 30여년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어딘가엔 박봉을 받으며 공장 미싱을 돌리는 노동자가 존재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 소외된 사람에 대한 작은 관심을 가지라고 전태일은 아직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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