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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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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핵 등 난제 산적▼
최근 북-일간 회담이 실현된 경위의 설명, 또한 회담의 결과 평가, 양국 간 관계를 전망하려면 양국이 상대방에 어떤 동기에서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북한은 올 봄 이래 대일 관계 개선의 신호를 발신해 왔다. 일본이 이에 전향적으로 대응해 수면 아래에서의 접촉을 거듭해 브루나이에서의 양국 외상 회담, 그리고 평양회담으로 이어져 나갔다.
북한에 대응할 때 작용하는 일본측의 의식구조, 고려 요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본은 지금이야말로 자기의 권익 보호를 위한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판단에는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고 있으며 미국의 강경정책의 대상으로서 약한 입지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둘째, 김대중 정부 임기 만료 전에 주어진 자유재량을 최대한 활용해 바람직하고 안정된 북-일 관계의 틀을 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거듭 발생하는 공작선 문제가 일본의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납치 일본인 문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며 일본 정계와 정부도 이에 민감하다. 북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결연한 태도 과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넷째, 일본 외무성은 대러시아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혼동, 중국 선양사건에서 보여준 괴이한 대응 등 일련의 불상사로 위신이 크게 추락했다. 외무성은 국가 이익 옹호의 선두 주자로서의 명예회복과 위상 재정립에 대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일본 현 내각에서는 북-일 국교정상화 과제는 거의 무관심이라 할 정도로 우선 순위가 낮다. 그러나 아주태평양국을 중심으로 한 외무성 관련 관료들은 북-일관계 개선의 목적 의식이 뚜렷하고 전향적이다. 또한 그들의 시각에서는 북-일관계 진전이 한국 및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 확대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 북한측의 북-일관계 개선 의욕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고려 사항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북한의 유화적이고 관계개선 지향적인 자세가 일본 정부의 조기 대북 식량 경제지원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거액의 배상금은 수교 후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은 북한도 인식하고 있다.
둘째, 강경 일변도로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북-일관계 개선으로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셋째, 북-일관계 진전은 중국 러시아 및 한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강화한다는 인식이 있다. 넷째, 포스트 김대중 정권을 의식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 테두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日 수교에 큰 관심 없어▼
최근 일본과의 회담에서 보인 유연하고 유화적인 태도로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진지한 노력을 다하고 있고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이미지 창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측이 최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납치 일본인 문제의 조기 해결에 북한이 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필자는 회의적이다. 또한 이 문제가 앞으로 일정한 조건 아래 일본이 납득하는 방법으로 ‘해결’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국교정상화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측도 그러한 판단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핵과 미사일 문제는 일본에도 중요한 문제다. 북-미간의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면 일본이 미국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수교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북한은 보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일단 북-일 양국 간 국교정상화 회담이 재개되겠지만 국교 수립의 여정은 여전히 길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전 아시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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