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서.용.빈 이름의 '중량감'

  • 입력 2002년 8월 26일 12시 02분


지난 14일의 잠실구장의 1루측 응원석을 황색 물결로 뒤덮게 만들었던 장본인인 서용빈이 19일 춘천 소재의 기무사 훈련소에 입소했다. 김성근 감독의 표현처럼 팬들도, 동료들도 '예상 이상으로' 그의 뒤늦은 입영에 대한 농도 짙은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어찌되었든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리그는 계속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될 최동수는 포수에서 1루수로 전향한 98년 이후 처음으로 트윈스의 1루를 독점하게 되었다. 앞으로 최동수, 그리고 간혹 백업 요원으로 출장하게 될 심성보가 어느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달 초 서용빈의 입대가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트윈스의 팬들이 보여준 아쉬움은 이들 대체요원들의 활약과는 별개의 것으로.. 완전히 채워지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트윈스의 팬이 아니라면 이러한 팬들의 정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서. 용. 빈, 이라는 '이름'이 주는 중량감은 한국 프로야구 20년史를 대표하는 선수들과는 '체급' 자체가 틀림만큼 차이를 보인다. 사실 그만큼의 성적과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 중 그만큼 자주 이야기되고 팬들 사이에 '설전'을 이끌어 내는 선수도 찾기 어렵다.

그의 입대가 임박한 시점에 각종 스포츠 지에서, 혹은 트윈스의 팬클럽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표현 몇 가지가 있다. '1루 수비의 지평을 새롭게 연 선수', '8개구단 최고의 1루수' 서용빈의 기량에 대해 논하는 많은 이들중 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그의 수비력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물론 그들의 시선은 서용빈이 가진 공격력 - 다른 1루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고, 그 갭을 수비력에서의 비교우위로 상쇄하기 힘든 - 으로 쏠려지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서용빈은 '과대평가' 된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1994

OPS

1995

OPS

1996

OPS

1997

OPS

김응국

.881

장종훈

.986

김경기

.824

김기태

1.096

김경기

.861

김기태

.929

이승엽

.812

이승엽

.989

김성래

.837

김경기

.824

이영우

.774

장종훈

.900

서용빈

.791

이승엽

.822

심성보

.765

서용빈

.818

김종석

.734

마해영

.819

마해영

.760

마해영

.815

강정길

.708

김종석

.790

김형석

.699

김경기

.731

이건열

.669

서용빈

.771

서용빈

.642

김형석

.694

신경식

.566

이건열

.682

이건열

.598

장성호

.662

위의 자료는 2001.02.08일에 게재된 young026님의 과대/과소평가 되는 선수들-(1) 이란 칼럼에서 소개된 것들이다. 서용빈이 교통사고와 병역문제 탓에 정상적으로 출장하지 못한 98시즌 이전, 전성기의 그와 각 구단의 레귤러 1루수들과의 공격력을 비교한 것들이다. 다른 포지션들에 비해 필드에서의 공헌보다 배터 박스에서의 공헌이 강조되기 마련인 1루수의 공격력 치곤 서용빈의 그것은 '평범' 하다. 물론 공격력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하다. 3할 타율을 기록한 94, 95, 97시즌의 그는 리그 최다 수준인 30, 28, 25 개의 2루타를 양산해 냈다. 그럼에도 그가 .800을 상회하는 OPS를 기록한 것은 타자들의 전체적인 배팅 파워가 향상되기 시작한 97시즌이 유일하다. 타격 4위, 최다안타 2위, 출루율 10위에 랭크되었던 94시즌조차 그의 OPS수치는 .791에 머물렀다. 이후의 야구인생에서 서용빈은 단 한 차례도 출루율과 장타율 부문에서 10위권내에 진입하지 못한다.

서용빈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던 몇 해전.. 그 해의 겨울 여의도에서 '1기 선수협' 이 출범하던 날 밤의 일이다. 행사장에 도착하는 선수들의 숫자, '영향력'을 가진 선수들의 참여 여부에 선수협 집행부와 성원차 나온 팬들과 취재진의 촉각이 쏠려있던 상황. 트윈스와 베어스의 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응원군' 들은 입장하는 선수들에게 일제히 환호성을 보낸다. 물론 선수의 인기와 유명세와 그 환호성의 크기는 대체로 비례한다. 다른 동료선수들과 달리, 혼자서 행사장에 도착한 서용빈에게 쏟아졌던 그 우렁찬 환호성은 지금도 생생하다. 정작 본인조차 '뜻밖의' 열렬한 환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입장하던 모습이었다. 본인의 신상문제만으로도 벅차고도 남을 그가 구단과 척을 지을지도 모를 선수협의 출범식에 참석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표정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법정에서의 송사로 훈련에 몰두하기 힘들었을 그에게 당시의 선수협 파동은 더할 나위 없는 악재였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 힘든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곡절 끝에 2000시즌에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공백을 거친 후 복귀한 그의 공격력은 이전에 비해 '더욱' 평범해 보였다. 2000시즌의 .356/.351/.707, 2001시즌의 .358/.358/.716, 2002시즌의 .344/.385/.729의 성적은 그의 공백기 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1루수로 자리잡은 이승엽과 우즈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다. 그가 많은 홈런을 때려내지 못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입대하기 전까지.. 통산 2513타수 동안 741안타를 기록하며 .295의 준수한 통산타율을 기록한 그가 기록한 홈런의 개수는 고작 21개에 불과하다. 126경기에서 371타수를 기록한 2001시즌에는 한 개의 홈런조차 기록하지 못했다. 대형구장의 증설 이외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타고투저의 시대에 '홈런을 때리지 못하는 1루수' 란 조소가 그에게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용빈은 '생존' 하는데 성공했다. 스미스와 양준혁, 로마이어와 최동수, 심성보 등의 경쟁자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구원 1루수' 로 그의 입지를 좁히기도 했지만.. 결국엔 서용빈은 살아남았다. 혹자는 '무적LG' 시절에 대한 팬들의 강한 향수와 압력이 트윈스의 코칭스텝 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팀의 리빌딩과 진로에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98시즌의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쇠퇴일로를 걸었던 트윈스의 재정비를 위한 트레이드 논의의 중심에는 항상 김재현과 서용빈이 있었다. 그들이 계속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팬들의 열화와 같은 '압력' 이 큰 부분을 차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독한 성적부진으로 결국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급박한 상황에까지 내몰렸던 이광은 감독이 오더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팬들의 압력과 성원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승리' 이외의 다른 것에서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김성근 감독의 캐릭터를 보아도.. 서용빈의 '생존' 은 적어도 트윈스 구단 내에서는 그의 효용가치가 '實存' 하는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수준급의 좌타자들의 포진한 트윈스의 라인업에서 서용빈의 효용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왼손잡이인데다 강견도, 준족도 아닌 그가 다른 포지션의 수비를 담당할 현실적 개연성도 크지 않다. 트윈스에 필요한 것은 장타력을 소유한 우투우타의 1루수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이 '최선' 의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 '최선' 이 '현실화' 되는 상황은 그리 흔치 못하다.

90년대 중반의 트윈스 라인업의 특징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취약한 포지션인 포수와 유격수 부문에서 다른 구단에 비해 상대 우위를 점해왔다는 점이다. 김동수와 유지현이 공수 양면에서 보인 양질의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심타선의 약점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것이었다. 사실 지명타자가 아닌 1루수가 반드시 뛰어난 공격력, 압도적인 장타력을 가져야만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라인업의 누군가가 그러한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90년대 후반 이전의 트윈스의 라인업은 장타력에서 열세를 보이는 1루수의 존재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전성기의 서용빈의 공격력은 1루수들 중에선 평범했을 지언정, 리그의 평균적인 야수들의 것보단 분명 훌륭한 것이었다. 수비범위에 비해 송구능력이 다소 부족했던 트윈스의 내야진에 서용빈과 같은 1루수는 분명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었다.

두 시즌의 공백이후 돌아온 그의 공격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상과 법정에서의 송사로 야구에 전념키 어려웠던 그의 환경을 감안하면 높이 평가해줄만 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 김동수와 유지현이 차지하던 자리엔 조인성과 권용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에게서 선배들만큼의 공격공헌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루를 서용빈이 지키고 있는 상황은 물론 바람직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문제는 오프 시즌동안의 스카우팅 혹은 동계훈련을 통해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적어도.. 2002시즌의 '현실' 에 국한시킨다면 서용빈은 '최선' 의 선택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바람직한 상황' 이 구현되지 못한 책임을 서용빈이 질 필요는 없다.

한 때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안았던 한 정치인이 '179cm의 신장에 45kg의 몸무게'를 가진 아들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었고, 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병역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서용빈에 대한 평가절하와 부정적인 평판에 그의 병역문제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중엔 단 한 사람의 예비역 병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선수에게 26개월의 공백이 '치명적' 인 것을 감안하면... 병역문제에 부딪힌 많은 선수들이 '다른 길'을 모색하고픈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의 '범법행위'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트윈스의 팬이 아닌 필자는 뉴스의 화면에 잡힌 그의 아내의 모습과 '62' 라는 숫자가 새겨진 노란 수건의 물결에 특별한 감회를 느끼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사실 없다. 다만, 그의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은 모두 내려졌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자를 두고 입대해야 하는 그의 지난 과오가 그라운드에서의 그의 모습을 평가하는 잣대로 쓰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은 해본다.

입단동기들과 함께 '무적LG' 시대를 이끌었던 그의 '진짜' 팀 공헌도는 팬들의 환호와 체감 보단 훨씬 낮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인기구단 소속이었다는 점이, 그가 세련된 외모와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다는 점이,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탤런트 아내를 가졌다는 점이 그의 유명세를 높이고 실체 이상으로 그의 역량을 평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but, 그것이 문제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1루 수비가 얼마나 팀의 승리에 공헌할 수 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그러한 논의와는 별개로 트윈스의 팬이 아닌 필자는 긴 리치를 이용한 신경식의 1루수비, 그리고 안정되고 간결하며 '세련' 되었던 서용빈의 수비를 '감상' 하곤 했다. 라이온즈의 팬들이 97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상훈을 격침시킨 신동주의 역전 홈런을 잊지 못하듯이, 트윈스의 팬들은 그 경기를 끝내 뒤집었던 서용빈의 끝내기 2루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과연 2005시즌에 돌아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선뜻 낙관하기 어렵다. 불혹의 나이에도 잠실의 마운드를 지켰던 老松, 30대 중반을 넘기며 또 한차례 전성기를 맞는 송진우와 같은 사례는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러나, 8월 14일 고별전의 8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서며 아쉬움을 삭여야 했던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2년 후의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긴 호흡' 으로 지켜보기로 하자.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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