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그들만의 잔치´ 신당논의

  • 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35분


백지(白紙) 신당, 거대 신당, 제3신당, 독자 신당, 개혁 신당, 반(反)부패 국민통합신당….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후 정치권에서 명멸(明滅)했던 ‘민주당발(發) 신당 논의’의 아이디어들은 가닥을 정리하기 힘들 만큼 어지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조어(造語)들을 관통하는 논리는 간단한 셈이다. ‘DJ당’의 이미지가 고착돼 있는 민주당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한 만큼 간판을 바꾸되 ‘반(反) 이회창 세력’을 가능한 한 끌어 모으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처럼 복잡한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이유는 신당을 논의하는 주역들이 ‘내가 창당을 주도해야겠다’거나 ‘내가 신장개업(新裝開業)한 당의 주자가 되겠다’는 서로 다른 셈법을 갖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민주당이 신장개업을 하겠다고 나선 절박함은 6·13지방선거가 우리 정당 역사상 원내 제2당이 겪은 사실상 ‘최악의 참패’란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특히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광역-기초단체장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풀뿌리 민심’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광역의원선거에서는 더욱 처절하게 무너졌다. 서울시의원은 92명의 지역구 정원 중 10명, 인천은 26명 중 2명, 경기는 94명 중 7명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그 결과 경기 지역은 관행적으로 15명으로 구성해 온 교섭단체구성 정족수를 선거 후 부랴부랴 낮추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야당으로서의 존립 의미마저 거부당한 셈”이라고 자탄했다. 의아스러운 대목은 8·8 재·보선마저 명백한 참패로 귀결됐는데도 ‘책임 떠넘기기 공방’만 무성할 뿐 선거 참패에 대한 자성의 분위기를 민주당 내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도부 중 누구 하나 선거 참패에 책임지고 물러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신당 논의의 와중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게 민주당의 상황이다.

한 초선의원은 “이런 상황에는 ‘신당 창당 바람에다 병풍(兵風) 공세만 적중하면 정권을 재창출할 수도 있다’는 지도부의 안이한 인식이 깔려 있는 게 사실”이라며 “대수술이 필요한 데 모르핀만 찾고 있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더더욱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정당 M&A 전문가’인 김대중(金大中·6개의 신당 창당 주도) 대통령의 후예들이 벌이고 있는 2002년판 신당 창당극(劇)에 ‘책임정치’나 ‘정당정치’의 개념은 아예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정당정치의 바탕이 집권당의 책임 아래 정권을 운영하고 그 공과(功過)에 바탕해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면, 민주당이 신장개업할 경우 국민의 입장에서는 공이 됐든 과가 됐든 그 평가에 바탕해 투표할 정당이 ‘완전 실종’되는 셈이다.

김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하고 탈당한 데다 그의 ‘적자(嫡子)와 양자(養子)’들마저 그와의 절연(絶緣)에만 몰두하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사실상 ‘헌정(憲政)의 파행 운영’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당내에서조차 “이게 정당이냐”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국민 설득의 명분을 만드는 데 노력하지 않을 경우 결국 민주당발 신당 창당 논의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동관 정치부 차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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