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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5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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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은 행인의 홍채를 인식해서 이름을 부르며 물건을 사라고 유혹한다. 로봇 경관은 홍채를 검사해 신원을 확인한다.
홍채는 눈동자의 검은 부위를 둘러싼 부위다. 영어 ‘Iri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에서 이름을 땄다. 한자 ‘虹彩’의 ‘虹’도 무지개를 뜻한다.
홍채는 주위가 어두워지면 수축해서 동공이 커지게 해 빛을 많이 들어오게 한다. 카메라의 조리개 역할을 하는 것. 홍채에서는 빗살 또는 동심원 모양의 선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조리개 역할을 하는 조임근들이다.
홍채 인식기는 이 조임근의 유형을 분석해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국내의 세넥스테크놀로지, 아이리텍 등 홍채 인식기 제조 회사들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일부 의사와 한의사 등을 중심으로 홍채를 통해 온갖 질병을 진단하는 ‘홍채 진단법’이 퍼지고 있다.
이 진단법의 원리는 홍채의 각 부분이 인체의 각 부분과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것. 일부에서는 최점단 진단기기에서 나타나지 않는 질병의 신호까지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과학자들은 “글쎄요”라고 말한다. 1979년 젠슨을 비롯한 3명의 홍채 진단가들은 143명의 홍채 사진을 통해 콩팥 질환자를 골라내는 데 실패했다. 이후 호주와 네덜란드 등에서도 이 진단법으로 환자를 가려내는 공개시험에서 실패했다.
연세대 의대 안과 김찬윤 교수는 “눈 질환도 홍채 하나만 검사해 확진할 수 없는데 홍채를 보고 다른 질환이 생겼는지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서양 의학에서도 홍채를 진단의 한 방편으로 쓰기는 한다. 눈에 손전등을 비췄을 때 홍채와 검은 동자가 움직이는 ‘대광(對光)반사’를 통해 뇌의 이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이 숨졌을 때에는 대광반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데 홍채가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항문 근육의 상태를 보고 심전도 검사를 한 뒤 최종 사망진단을 내린다.
홍채는 대부분은 생후 6∼18개월에 완성돼 변하지 않지만 눈 수술 뒤 변하기도 하고 눈을 다친 뒤 홍채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선천적으로 홍채가 없는 사람도 있다. 홍채 진단법으로는 이런 것들을 설명할 수도 없다.
홍채 진단법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여러 대체의학 중 하나일 뿐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자신의 얼굴에서 빼낸 눈을 홍체 인식기에 대고 보안문을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도 현재로선 과학이 아니다. 홍체 인식기는 빛의 양에 따라 변화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눈만 인식할 수 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