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문명의 시초-태고의 숨결 찾아 떠난 여행

  • 입력 2002년 8월 23일 17시 45분


◇바이칼 / 김종록 지음 / 279쪽 1만2800원 문학동네

◇영원한 문화도시 아테네 / 김봉철 지음 / 296쪽 1만8000원 청년사

자기 문화의 시원(始原)을, 아득한 선조들의 삶을 찾아보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옛 사람에게서 이런 욕구는 신화와 건국설화로 형상화됐고, 오늘날에는 실증을 통한 ‘과거찾기’가 호기심과 용기를 갖춘 이들을 사로잡는다. 서구인은 아테네를 찾아 고유 문명의 시초를 탐색하고, 우리는 바이칼의 푸른 물빛에서 아득한 태고의 숨결을 발견한다.

소설가 김종록은 1996년부터 네 차례나 바이칼 호수 인근을 여행했다. 찬 호수에 몸을 담그고, 우리와 얼굴 생김새가 똑같은 부리야트족의 굿을 체험하고, 세계 민물 총량의 5분의 1을 담고 있는, 빙하기 이전 동아시아인의 문명과 꿈이 모인 ‘어머니 호수’의 이곳저곳을 수첩에 담아 컬러 사진 80여장과 함께 내놓는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섬의 일몰을 배경으로 돌아가는 고깃배, 얼음 사이로 펼쳐지는 일출, 불과 춤으로 솟구치는 호수 주변 부족의 축제….

옛 러시아 귀족들의 유형지 이르쿠츠크에서는 사랑을 택해 부귀를 버린 데카브리스트 반란자 부인들의 기록을 소개한다. 열아홉 나이에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혔던 화가를 만나 엄혹했던 구소련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지구의 냉동고인 야쿠츠크에서 만난 몽골리언 청년. 그가 그려준 솟대 그림이 작가를 자연사 박물관으로 인도한다.

나무 기러기와 까마귀를 깎아 세우고 금줄을 친 모습이 전통 혼례식의 전안례(奠雁禮·기러기 모양을 상 위에 올려놓고 절하는 의식)등 우리네 풍속 위에 겹쳐진다. 알타이 산 부근에서 만난 돌하르방 모양의 석상도 감전과 같은 충격을 준다.

“우리 앞에는 채 씌어지지 않은 백지가 있다. 광활한 만주벌판이나 시베리아를 거시적으로 보자. 내게 있어 민족과 민족문화는 편협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열린 사회를 지향하고 세계인과 연대하기 위한 그 무엇이다.”

서양사학자 김봉철은 현실의 그리스 수도 아테네를 찾아 역사의 시선으로 복원해낸다. 단체 여행객들이 무심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골목골목이, 다채로운 화보와 함께 영화롭던 옛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곳은 ‘신들의 공간’ 아크로폴리스, 평민이 거리낌없이 활동하던 공간은 저지대의 아고라. 그렇다면 그 중간높이의 지역은? 귀족의 땅 아레오파고스였다.

일찌감치 폐허가 돼 쓰레기만 널린 이곳은 일찌감치 권력 중심을 평민에게 이양시켜야 했던 그리스 귀족계급의 몰락을 웅변한다.

그리스인의 정신 역시 두 개의 층을 지닌다. 다신교와 헬레니즘의 고향이면서도 기독교의 일파인 그리스 정교가 현실세계를 장악한 있는 일신교의 나라. 비잔틴 제국이 남겨놓은 수도원과 성당 역시 저자의 눈길을 비껴나지 않는다.

시간 보내기나 ‘고대의 명상’을 위해서라면 이 책을 택할 필요가 없다. 건축사와 종교사, 고대정치사를 망라해 치밀한 ‘지적 축적’을 원하는 독자에게 제공돼야 할 밀도 높은 책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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