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철저한 검증이 인준 잣대

  • 입력 2002년 8월 20일 18시 57분


새 총리서리에 대한 국회청문회와 임명동의안 처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이것이 ‘혹시나’일지 ‘역시나’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장상 전 총리서리가 국회 임명동의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의 전통을 바르게 확립하기 위해서도 이번 검증절차는 공정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임명동의 역시 청문회 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재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청문회 투기의혹 규명을▼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 임하는 각 당의 자세가 어째 미덥지 못하다. 각 당은 집안문제에 사로잡혀 청문회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둘러싼 당내 갈등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고, 한나라당 역시 병풍(兵風)을 방어하느라 이 문제에 열의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이번에 또 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경우 다수의 힘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이 청문회의 강도나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청문회는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두 번째 맞는 것이다. 이제 막 도입된 제도를 처음부터 정치색으로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정략적 이유 때문에 사람마다 청문회 강도를 달리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지난번 장상 전 총리서리에 대한 청문회와 대비되어 성차별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청문회는 어떤 선입견도 없이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임명동의 역시 청문회 결과를 지켜본 후 의원 개개인이 판단해야지 사전에 정치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 장대환 총리서리에 대해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여러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재산증식 과정에서 상속세의 정상적 납부 여부, 부동산 투기 의혹, 우리은행 거액 대출 경위 및 사용처, 자녀 위장전입 여부, 현정권과의 유착 여부 등이 그것이다.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되는 이러한 의문점들은 청문회 과정에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청문회가 개인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지난번 장상 전 총리서리에 대한 청문회는 반쪽의 성공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도덕성 문제에 집착하는 바람에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이러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점에서 정치권은 현 시점에서 총리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역 계층 이념 이익집단 등을 둘러싼 온갖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이는 선거철을 맞아 더 심하게 표출되고 있다. 부처간의 알력도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차기 총리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화합과 포용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정부의 임기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차기 총리는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는 의욕이 지나친 사람보다는 현정부가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을 설거지하여 마무리짓는 수습형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대형 프로젝트나 사업은 당장 추진하기보다 연구 검토에 그칠 수 있는 자제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정치는 유례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당인 민주당을 탈당하여 집권당이 사라졌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양당은 대권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이 걱정되는 가운데 헌법에도 없는 총리서리가 집무하면서 국회 임명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임기 말 권력누수의 심화로 공직사회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한마디로 권력을 잡고 싶어하거나 그 언저리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 시점에서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나 집단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정권 마무리 잘해야▼

이런 시점에 총리라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차기 총리는 한편으로는 정치권을 설득하여 국정에 대한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력을 지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요하는 공직사회를 다잡을 수 있는 장악력도 지녀야 한다.

청문회에서 새 총리서리를 대상으로 정치권이 검증해야 할 자질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도덕성과 함께 국정 수행능력과 관련된 이러한 자질들이 분명하게 검증될 때 국민은 새 총리를 환영할 것이고, 인사청문회라는 새 제도 역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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