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북한산 터널 합의는 체면용?

  • 입력 2002년 8월 18일 18시 59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국립공원 내 사패산 터널구간 공사를 8개월째 물리적으로 저지해온 불교계 및 환경단체는 연말까지 공사를 보류하는 조건으로 농성을 풀기로 14일 공사 시행자인 서울고속도로㈜측과 합의했다.

양측은 남은 4개월여 동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노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대안노선을 검토하기로 하고 고소 고발도 취하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문제가 된 터널 구간만 빼고 이 노선의 다른 구간은 공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서울고속도로측 관계자는 “이는 사실상 사패산 터널을 뚫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의미”라며 “노선변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측이 8개월 동안 대치하며 10여건의 고소고발 사태까지 빚은 것은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는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시행사측은 사패산 터널이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양측의 합의를 보면 터널 공사를 단지 몇 개월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 외에 양측이 그토록 목청을 높여 다퉜던 북한산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이 때문에 본질은 사라지고 체면만 고려된 합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은 법원에서 잇따라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농성현장에서 강제로 해산당할 위기에 몰려 적당한 때에 자진철수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고, 시행사측도 이들에게 ‘하산’의 명분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4개월 공사보류’였다는 지적이다.

교통난 속에서도 이들의 대립을 지켜봐 온 경기 북부 주민들은 이 같은 합의에 “이럴 바에야 애당초 왜 공사를 방해했으며 어차피 뚫을 것이라면 무엇 하러 4개월을 늦추느냐”고 말하고 있다.

단지 어느 한쪽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공사 보류는 수도권 주민 입장에선 교통난을 연장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동영 사회2부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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