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필요▼
두 번째로 지명하려던 킴바 우드라는 여자판사도 같은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어 사퇴하였다. 곤경에 처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세번째로 아예 이런 종류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독신의 재닛 리노를 지명하였다. 리노씨는 소신 있고 강단 있는 미국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으로 클린턴 정부 동안 장수하였다.
장상씨의 경우 여성이어서 더욱 심한 자격론 시비에 휘말렸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미 대통령 아들들의 문제와 벤처게이트 등으로 도덕적 정당성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 여기에 또다시 사소한 것이라도 법적 정당성의 시비나 이런저런 도덕적 시비가 있는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국민의 실망과 정치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동안 공직자들이 연루된 각종 부패 사건들과 부도덕한 공직 후보자들을 보면서 도덕적으로 흠 없는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높아졌다. 이번 총리서리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국민은 우리 사회의 ‘가진 사람들’ 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권리는 누리려 하면서 책임은 가능한 회피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였을 것이다.
장상씨가 총리로 인준되지 못했다고 해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 향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능력을 갖춘 여성지도자가 왜 없겠는가. 장상씨는 하필 여성이어서 된통 당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공직자나 그 후보자는 시민으로서의 의무 수행에 있어 결함이 없어야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처음 장상씨가 지명되었을 때 일단 여성이므로 호의적이었던 각계의 반응을 고려한다면 장차 국정의 중직에 또 여성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실망하지 말고 좀 더 준비된 여성 지도자를 많이 길러야 한다.
이번 일을 보면서 저간의 정치적 원인 분석과 함께 향후 대선 정국과 관련한 정치권의 향방에 대한 계산이 분분하다. 표결의 결과로 보아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꽤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민주당 지도부의 당 장악력에 문제가 있고 자민련과의 공조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아직 서슬 퍼런 정권의 초기였다면, 그리고 민주당이 자민련이나 기타 세력을 규합할 실력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공직자의 자격에 대한 판단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 총리서리의 인사청문회 전에는 적당히 혼을 내고 임명동의는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추측이 무성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선출직 公人´票로 심판해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는 것도 국민에게는 정치적 학습의 과정이다. 이런 것을 지켜보며 국민은 고위 공직후보자는 저잣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보다 높은 시민의식과 공적 도덕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은연중 합의하게 되었다. 국민의 눈높이가 한번 올라간 다음에 그것을 다시 낮출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도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거나 선출할 때 공인으로서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지 청문회나 선거과정을 통해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고위 공직자의 자격과 능력에 관한 심사가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인사청문회 대상의 확대, 절차와 방법의 개선도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선출직의 경우 선거과정에서 공인으로서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후보들은 밝혀내고 심판해야 할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이번 일이 남긴 과제다.
김진영 부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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