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이현희/냉전을 넘어 평화로

  • 입력 2002년 6월 23일 19시 03분


“한반도 전 지역이 무시무시한 혼란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름난 것으로 서 있는 물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에야 우리는 지상에 내려앉았다. 한국에는 더 이상 폭격할 목표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토화된 것이다.” 6·25전쟁 개시 후 3개월간 전 지역의 재해가 엄청났음을 말하는 당시 미군 극동포격사령관 에밋 오도넬 장군의 표현이었다.

필자는 중학생이었을 때 이러한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을 맛본 것이다. 전쟁 중 소련제 미그 전폭기가 서울 상공을 날며 굉음 속에 마구잡이 기총소사 등으로 인명을 살상할 때 “이런 것이 목숨을 빼앗고 건물을 파괴하는 전쟁이구나” 하고 어린 가슴에도 침략자가 저주스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더욱이 이로 인해 2명의 가족을 잃은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민족 역사상 최악의 참상▼

그때 서울 북아현동에서 전쟁을 겪었다. 호기심이 컸던 때여서 그런지 폭탄 투하, 폭격이나 요란한 따발총 소리가 나면 곧 뛰어나와 거리의 광경을 보곤 하였다. 좁은 주택가 골목곳곳에 남녀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앉아 당한 대부분의 서울 시민과는 달리 어느새 서울을 빠져나가 발빠르게 피란을 간 뒤 빈집들이 불길에 싸여 있었다. 여럿이 물통이며 대야에까지 물을 퍼다가 끼얹자 겨우 불길이 잡히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인민군이나 동네토박이 공산당원들이 괴롭히며 쌀 밀가루 등 닥치는 대로 탈취하여 갔다. “조국해방전쟁이니 기꺼이 바쳐라”는 것이었다. “부산까지 전부 해방시킨 뒤 지상낙원을 건설해 줄 터이니 안심하고 협조하라”고 윽박질렀다.

지상낙원을 외치던 인민군과 자위대원이라는 자들은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고 곡식을 착취해 가고 사람을 잡아갔다. 3000만 국민이 모두 그러한 비참하고도 위협적인 공갈 협박을 받았으니 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상념이 살아날 리 없겠다.

심지어는 협조하지 않는다고 들고 다니던 칼로 찔러버리는 참상까지도 목격하였으니 동족간의 이런 행패가 또 일어날까봐 지금도 몸서리처지는 것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서울 운종가(종로)에는 왜병에게 죽임을 당한 백성의 시체가 하도 많이 쌓여 매일 시구문을 통해 옮겨가 처리하였는데도 흥인문(동대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병자호란 때에는 삼전도, 지금의 잠실 일대가 피로 물들어 5일간이나 계속 강물이 벌겋게 흘러내렸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인구비례로 따져볼 때 유구한 우리나라 역사에서 6·25전쟁만큼 인적 물적 피해가 극심한 때가 없었다. 우리측 사상자는 국군 30만, 미군 40만, 유엔군 3만, 민간인 100만명이 사망하였다. 또 100만명이 행방불명되었고 10만명이 납치됐다.

그리고 북한 측의 사망자는 군인 50만명, 중공군 90만명이었고 중경상자도 30만명에 달한다는 공식기록을 접해 볼 수 있다.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에 가면 그것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이때 납북된 인사 중 많은 분들은 아직도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또 국군포로 중 생존자의 적절한 송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그 후 각종 도발로 인해 북한에 끌려가 고생하는 동포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1000만 이산가족의 슬픔은 더할 나위 없겠으나 이들고 같은 새로운 이산가족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월드컵 신화, 통일로 승화를▼

몇 년 전 미국의 기록보존소에서 김일성문서와 미국의 6·25전쟁 사료를 보고 적이 놀랐다.

6·25전쟁 발발 전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관한 각종 문서에 남침의 증후가 분명히 나타나 있었는데도 우리는 확실하게 대비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6·25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50년이 지나고 냉전이 종식된 지금 냉전시대의 논리는 평화의 논리로 전환되어야 하며 동족간의 왕래와 상호주의적 원칙 하에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이 불투명해져 더 이상 여기에 통일의 희망을 걸 수 없게 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렇지만 결국 통일은 우리 손으로 성취해야 한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이룩한 국민이다.

이현희 성신여대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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