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4…1925년 4월 7일(4)

  • 입력 2002년 6월 23일 17시 32분


우철이 인력거에 태워 데리고 온 일본인 산파는 산실로 들어서자 우선 하얀 모자를 쓰고, 기모노 위에다 앞치마 같은 하얀 옷을 입었다.

“오유오 와카시테 구다사이” 산파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부치고 말했다.

“물을 끓여 주세요” 우철이 조선말로 통역하여 할머니 강복이에게 전했다.

산파는 검은 치마를 가슴 위로 걷어올리고 희향의 하복부에 나팔 모양 검은 청진기를 갖다대었다.

“아기의 심장 소리가……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요. 거꾸로 있지는 않은 듯 하네요.”

산파는 복이가 쇠대야에 담아온 따뜻한 물에 크레졸을 풀어 팔뚝 아래를 소독용 솔로 꼼꼼하게 씻고, “자,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긴장을 풀고”라면서 촉진을 하고, 손목 시계를 보면서 진통의 간격을 쟀다.

“자궁문도 상당히 많이 열려 있고, 진통도 2분 간격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세한 얘기는 인력거를 타고 오면서 아드님한테 다 들었어요. 새벽 3시쯤부터 진통이 시작됐으니까, 14시간이나 지났는데, 소변은 몇 번이나 보았죠?”

“오줌 몇 번 눴나?” 우철은 질문과 지시하는 내용만 통역하기로 했다.

희향은 복이와 얼굴을 마주보고서, “안 눴는데”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변이 고여 있으면 아기가 산도로 내려올 수가 없어요. 관을 넣어서 소변을 빼내겠어요.”

산파가 요도에 가테테르를 삽입하자 금방 쇠대야에서 소리가 났다.

“아야” 희향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앙물었다.

“안 돼요, 힘 주지 말아요.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어요. 자, 들이쉬고, 자, 내쉬고.”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우철은 자기가 먼저 호흡을 해 보이고, 산파의 말을 통역했다.

“다음 진통이 올 때까지 쉬어도 좋아요. 잠시 눈을 붙여도 좋고. 귀여운 아가를 안는 꿈을 꿀 거예요.” 산파는 희향의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이마에 들러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떼어내고 땀을 닦아주었다.

복이는 산신상 앞에서 두 손을 머리로 올린 채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조선식 절을 몇 번 하고, 같은 말을 거듭거듭 읊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신 할매께 비나이다, 그저 아기가 무사히만 태어나게 해주소서.

다음 진통에서 태반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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