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과의례’式 재신임은 안된다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36분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어제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후보직에 대한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그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 후보는 “국민여러분의 채찍질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재신임의 절차와 방식은 당에 일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재신임 절차를 밟을지는 전적으로 민주당이 결정할 문제다. 국민은 민주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고 평가를 내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 되든 그것이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비쳐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담아내는 방식이 아니면 국민은 또 한차례 실망할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국민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아들 문제 등 권력형비리에 대해 냉정하게 응징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 후보로서는 재신임 과정에서 이 같은 권력비리에 얼마나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인지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노 후보는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이에 대해 딱부러진 자세를 보여주지 못해 국민을 실망케 했다. 언제는 대통령 아들의 비리에 대해 불구경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다가 언제는 또 규탄하는 자세를 보이는 등 국민의 눈에는 애매모호하게 비쳐진 것이 사실이다.

그는 또 선거과정에서 공당의 대통령후보답게 품위를 잃지 않고 한점 부끄러움 없는 선거운동을 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으로 승부하자는 평소 그의 소신에 걸맞게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쳤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노 후보는 재신임 과정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비단 노 후보뿐만이 아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도 반성하고 참회한다는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행동으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민주당 안에는 지금 선거결과를 놓고 지도부 인책론, 제2의 당쇄신론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당 내부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당이 정말 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하루빨리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진정한 변화만이 민심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과 청와대가 임기 중 ‘아들비리’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문제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지금까지처럼 대통령이 당적을 떠났다는 얘기만 되뇌고 있다면 지방선거가 주는 교훈은 간 곳없이 양쪽 모두 또 한번 불행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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