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공짜

  • 입력 2002년 6월 6일 22시 50분


독일의 한 생활용품 체인점은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독일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물건값을 5%씩 깎아주겠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 회사는 1일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8 대 0으로 이기자 당황했다. 무려 40%의 ‘왕창세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 약속한 대로 사흘간의 세일에 들어가자 독일 전역의 500여 체인점에 인파가 몰려들어 진열대가 금세 바닥나버렸다고 한다. 매상고를 높이기 위해 월드컵경기를 활용해보려다 오히려 큰 낭패를 봤을 법한 사례다.

▷엊그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강호 폴란드를 2 대 0으로 이겼을 때 전국 곳곳에서 한바탕 ‘공짜 바람’이 불었다. 맥주를 공짜로 서비스한 술집이 있었는가 하면 소주와 삼겹살을 무료 제공한 고깃집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 팀의 통쾌한 승리로 한껏 고무된 손님들로서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국가적으로 경사가 있을 때마다 일부 음식점들이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곤 했다. 가까운 예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LPGA에 진출한 박세리 선수가 처음 우승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세상에 진정한 공짜란 없는 법이다. 지금도 길거리의 많은 업자들은 ‘무료’를 내세우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으나 무료 제공을 위해 들어간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목표로 하는 속내가 분명 있을 것이다. “경제적 진리를 보통 사람이 이해하도록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결국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된다.” 이건 말은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로 이름 높은 미국 시카고 경제학파에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축구대표팀이 미국 포르투갈과 승부를 벌이는 10일, 14일에도 ‘공짜’ 소식이 기다려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날 음식점의 공짜 서비스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경제학적 진리로만 얘기할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음식점으로서는 그날 하루 공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단골 손님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한국팀 승리를 축하하는 마음을 손님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겠는가. 한국팀이 남은 경기에서도 선전을 벌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짜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갖게 되기 바란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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