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6강 가는길 해법은 있다

  • 입력 2002년 5월 29일 18시 37분


《리허설은 끝났다. 체력과 정신력, 전술 등 모든 측면의 준비를 마친 한국대표팀. 23명의 태극전사들의 가슴속에는 오직 하나의 소망만이 존재한다.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과 월드컵 첫 승. 현재까지 나타난 D조 4개국의 전력을 보면 포르투갈이 다소 우위에 있을 뿐 나머지 3개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결국 당일의 컨디션과 집중력, 때에 따라선 ‘운’이 승부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전망. D조 3개국의 전력을 꼼꼼히 살펴보자.》

■왼쪽 수비구멍 집중 공략하라■

▼폴란드-6월4일 화요일 오후 8시30분 부산서 격돌▼

폴란드는 체력과 스피드가 좋은 팀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드필드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을 펼친다. 포메이션은 4-4-2를 즐겨 사용하며 수비보다는 공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마누엘 올리사데베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뛰고 있는 파베우 크리샤워비치라는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2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미드필드부터 힘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압박 작전을 펼친다. 중원에서 볼을 가로채 스트라이커에게 단 한번의 롱패스로 연결시키는 역습을 자주 이용한다. 나이지리아에서 귀화한 올리사데베는 흑인 특유의 탄력과 볼 키핑능력, 돌파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 그가 대표팀에 합류한 뒤 폴란드의 평균 득점은 경기당 0점대에 2점 가까이로 높아졌다.지역예선 10경기에서 팀내 최다인 8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크리샤워비치는 몸놀림이 매우 빠르고 위치 선정 능력이 탁월하다. 올리사데베가 잡는 득점 기회의 절반 이상은 크리샤워비치가 만든다. 또 월드컵 예선에서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 성공률이 28.6%일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키커가 많다.

폴란드의 약점은 단조로운 공격루트. 뛰어난 플레이메이커가 없기 때문에 공격 루트가 단조롭고 지나치게 올리사데베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수비. 특히 제브와코프나 지엘린스키가 맡는 왼쪽 라인이 취약하다. 올 북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도 왼쪽 수비라인이 수차례 무너졌다. 일본과의 평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키가 큰 중앙수비수 하이토와 발도흐는 몸놀림이 둔해 상대 공격수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상대가 미드필드에서부터 강한 압박으로 나올 경우 허둥대며 경기 전체의 흐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또 경기 초반에 매우 약해 월드컵 예선에서 초반 15분에 4실점을 했고 프랑스월드컵 이후 지난해말까지 A매치에서 같은 시간대에 6실점했다.

폴란드를 잡기 위해서는 미드필드에서의 강한 압박이 필수. 일본이 3월 평가전에서 2-0으로 폴란드를 무너뜨린 것도 이와 같은 ‘압박’이었다. 히딩크 감독도 “폴란드전 승리의 비책은 압박축구”라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보여줬듯이 우리 선수들이 거친 몸싸움과 압박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하고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이어지는 롱패스를 차단 올리사데베를 고립시킨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폴란드의 측면 수비 허점을 파고드는 활발한 오버래핑이나 월패스를 통한 측면 돌파도 주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반에 힘빠지면 밀어붙여라■

▼미국-6월10일 월요일 오후 3사30분 대구서 격돌▼

미국은 유럽과 남미 스타일을 결합한 ‘퓨전 사커’를 추구한다. 개인 기술도 뛰어나지만 힘을 바탕으로 한 조직력으로 승부한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의 1승 제물로 꼽히고 있지만 최근의 전력은 결코 녹녹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폴란드보다 미국과의 경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미국의 공격의 핵은 플레이메이커이자 주장인 클라우디오 레이나.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더랜드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다. 나이는 29세에 불과하지만 94년과 98년 월드컵 본선, 92년과 96년 올림픽에 출전한 백전노장. 90분 내내 미드필드를 누빌 수 있는 강한 체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다. 그의 발끝에서 공격수에게 한번에 찔러주는 패스는 미국 공격의 핵심이다. 또 스트라이커 무어와 스튜어트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미국이 넣은 11골중 7골을 합작했을 만큼 위력적이다.

레이나가 공격을 이끄는 축이라면 제프 어구스(34)는 수비의 핵심. 1988년부터 14년간 미국 대표팀의 최종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한국의 ‘홍명보’와 같은 존재. 미국의 포백 수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구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구스는 정확한 왼발 킥은 세트플레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미국의 아킬레스건은 체력. 전반에는 조직력있는 플레이를 펼치다가도 후반들이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약점을 드러낸다. 포백라인의 평균 연령은 32세. 스피드와 몸싸움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동안 열린 평가전을 분석해 보면 미국은 후반 급격한 체력저하로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측면 수비가 자주 뚫렸다. 특히 스피드가 빠른 팀의 2 대1 패스와 2선에서의 침투 공격에 취약했다. 지난달 18일 아일랜드 전에서 1-2로 패한 뒤 AP통신은 “만약 이런 수비라면 본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혹평한 바 있다.

레이나의 볼 배급을 차단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김남일 유상철 등 힘이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레이나를 철저히 묶어야 한다. 또 미국이 체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반에는 미드필드부터 강한 압박으로 체력 소모를 유도한 뒤 후반에 승부를 거는 전술이 필요하다. 특히 빠른 좌우 윙백을 통해 측면을 뚫고 들어가 문전으로 센터링하는 전술이 측면 공격에 취약한 미국 수비진을 뒤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싸움 강하게…거칠게…매섭게…■

▼포르투갈-6월14일 금요일 오후 8시30분 인천서 격돌▼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 우승 후보중의 하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가 말해주듯 D조의 다른 팀보다는 한 단계 수준이 높다. 유럽의 조직력과 남미의개인기가 절묘하게 조화돼 ‘유럽의 브라질’로 불리며 엔트리 대부분이 10년 이상 발을 맞춰 팀워크에 관한한 최고의 팀으로 꼽힌다.

포르투갈은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과 맞붙은 월드컵 유럽 2조 예선에서 7승3무로 무패를 기록했다. 10경기에서 33골을 넣었고 실점은 7점에 불과하다. 포르투갈의 최대 강점은 루이스 피구와 세르지우 콘세이상, 후이 코스타로 이어지는 탄탄한 조직력의 미드필드. 이들 미드필더진은 뛰어난 패스와 공간 활용 능력, 골 결정력까지 갖춰 상대팀에는 가히 공포스러운 존재다. 특히 상대 수비수 2, 3명은 한 번에 제칠 수 있는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드리블, 어느 위치에서건 슈팅을 날릴 수 있는 감각과 힘을 갖춘 피구는 포르투갈대표팀의 핵심. 여기에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8골을 터뜨린 페드루 파울레타와 누누 고메스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출동한다. 게다가 대표선수 대부분이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우승을 일궈낸 멤버로서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정도다.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포르투갈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이후 최고의 전력”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굳이 약점을 찾는다면 피구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 피구가 묶인다면 의외로 경기가 어렵게 풀릴 가능성이 있다. 또 왼쪽의 수비라인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4월 포르투갈이 프랑스에 0-4로 졌을 때에도 3실점이 왼쪽 윙백의 허점에서 비롯됐고 유로2000 잉글랜드전에서의 2실점(3대2승)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기동력도 유럽의 최고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세계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모인 탓인지 격렬한 몸싸움을 피하는 경향도 있다.

포르투갈을 깨는 유일한 해법은 피구를 묶는 것이다. 김남일이나 유상철, 이민성과 같은 전담 마크맨을 통해 피구의 활동을 제한해야한다. 특히 공격에 있어서는 이영표 송종국과 같은 빠른 윙백을 활용, 상대적으로 취약한 좌우 측면 돌파를 시도하고 미드필드부터 반칙을 마다않는 거친 압박을 펼쳐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으로서는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것도 행운. 포르투갈이 먼저 2승을 거둘 경우 피구 등 주전 등이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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