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종대/검찰 밟기도 득표전략?

  • 입력 2002년 5월 29일 18시 11분


검찰이 정치권의 동네북이 되었다. “검찰 내에 친(親)이회창 세력이 있다”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발언은 그 극치를 보여준다. 어디 그 뿐인가.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야당의원들이 검찰청을 항의 방문하겠다고 하자 이명재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확답’을 주는 것으로 사태가 진정되었다. 이 총장은 ‘천금같은 침묵’으로 ‘수도승’처럼 총장 직무를 수행한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언론에 처음으로 외부접촉 사례로 보도된 것이 바로 이 ‘굴복’의 스토리다. 국민이 그동안 가졌던 신선감, 그리고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법권 독립에 대한 도전▼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검찰은 사법권 독립의 토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법원의 독립만으로 사법권 독립은 달성될 수 없다. 법원이 아무리 독립되어 있어도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은 사건은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찰권에 대한 도전은 사법권 전체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고 이는 곧 국민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더라도 써서는 안 되는 수단이 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그들에게는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수단만이 허용되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심판 또한 투표를 통해 정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검찰 폄훼 행위가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네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린 검찰 내부의 뼈아픈 자성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 이후의 홍업씨 소환방침을 총장이 나서서 뒤집은 일련의 사태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오해를 사기에도 충분했다. ‘정쟁중단’이 수사중단을 의미할 수는 없고 수사를 하다가 소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소환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검찰에 원칙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이 월드컵이라는 체육행사와 검찰의 수사라는 국권의 기초행위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들이 하는 게임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은 박상천 현 민주당 최고위원이였다. 그는 김영삼 정권 말기의 검찰총장에서 정권이 교체된 차기 정부의 법무장관으로 발탁된 이례적인 인물이다. 결국 ‘옷 로비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지만 총장 재임시 DJ비자금을 수사하라는 압력을 거절한 것이 발탁배경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이 그때와 같은 정권 말기다. 누가 대권을 잡을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각자의 계산에 따라 말을 갈아타는 철새정치인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태정씨의 경우에서 보듯이 검찰도 잘만 선택하면 차기 정부에서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정치검찰’이다. 이런 집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정치권은 ‘나에게 줄을 서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검찰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권 바로 세우기는 ‘훌륭한 총장’ 개인의 도덕성으로 달성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서 자신을 향해 사정(司正)의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성군(聖君)은 있을 수 없다는 개인적 도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제도다. 그래서 온갖 부정과 타락,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투표해서 뽑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한다.

▼´총장 임명권´견제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정치권에 대한 단절을 제도화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검찰이 정치인의 ‘발탁’에 목을 매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그것은 달성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찰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형식적 임명권만 행사하고 구체적 인물에 대한 선정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사청문회, 대의기관인 국회에서의 선출, 또는 검찰내부에서 선출하는 방법 등 얼마든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한 정치권의 검찰 흔들기는 계속될 것이다.

배종대 고려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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