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田부총리의 ˝네탓이오˝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52분


“기업들이 투자에 인색한 점은 반성해야 한다.”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3일 한 조찬회에서 이같이 발언함에 따라 재계가 경악하고 있다.

전 부총리는 “업계가 세계화와 무한경쟁시대를 강조하면서 실제 투자에는 인색하다”며 “외국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고 다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식으로 표현했겠느냐”면서도 “돈이 된다면 하지 말라 해도 투자를 하는 게 기업인데 마치 기업이 게을러 투자를 하지 않은 것처럼 부총리가 꾸짖는 것은 난센스”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도 온갖 규제와 정책 불투명성으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아직 수두룩한 규제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을 수천억원씩 쌓아놓은 기업이 단지 투자하기 싫다고 저금리시대에 돈을 금융기관에 맡겨놓겠는가. 투자 부진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나타나는 세계적 현상이다.

최근의 투자 부진은 시장의 불확실성 탓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은 기업보다는 정부의 몫 아닌가.

전 부총리는 ‘시장경제가 꽃피는 시대’라는 저서를 낸 적이 있다. 자신이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고 그 책에서 강조했다.

시장경제가 꽃 피려면 민간의 창의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기업에 대해 훈계조로 발언하면서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투자 부진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원인을 살피고 투자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간기업에 대해 발언할 때는 표현 방법이나 어휘 등에도 좀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박래정기자 경제부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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