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이후보 '6·15선언 2항' 폐기발언 논란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40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2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남측 연합제와 북측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정한 6·15공동선언 2항의 폐기를 거론하자, 청와대와 민주당이 즉각 ‘냉전 논리’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재반박하고 나서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후보에 대해 ‘위험한 사고’‘큰일 낼 사람’‘망언’ 등 성토발언이 쏟아졌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인사말에서 “연합제안은 노태우(盧泰愚) 정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현 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 총리도 하고 여당 총재도 지낸 분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느냐”며 “연방제와 연합제도 구분 못하는 이 후보는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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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남북화해협력교류추진특위는 성명을 통해 “7000만 겨레의 소망이 담긴 평화장전인 6·15공동선언을 무화시키려는 의도에 대해 민족의 이름으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도 “공동선언 2항은 통일이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며,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남북이 인식을 같이한 것이다. 이런 인식의 공유를 통해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우리의 연합제에 가깝게 다가온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 들어 잘못된 대북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다. 연방제를 납득할 수 없다는 국민의 뜻을 지적한 데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한다는 증거다”고 반박했다.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6·15선언에 따른 남북한 약속을 북측이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도 ‘수정’ 또는 ‘부분폐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은 “이 후보의 발언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모든 방침을 정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냉전적 사고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반민주적 사고이다”며 청와대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조약 아닌 합의…‘폐기’ 적용 어려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2일 밝힌 6·15 남북공동선언 2항의 부분 폐기 의사는 구체적인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6·15 공동선언은 국가간의 합의인 조약의 성격보다는 영수회담에서의 정치적 합의사항과 같이 상대방의 신사적 태도를 전제로 한 정치적 선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즉 6·15 공동선언은 남북 정상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간의 신의에 기초한 정치적 선언이므로, 국제법적인 효력을 전제로 한 ‘폐기’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중앙대 제성호(諸成鎬·법학) 교수는 “6·15 공동선언은 조약에 사용되는 일방적인 폐기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굳이 변경의 의사가 있다면 새정부가 출범한 뒤 새로운 남북정상 간 합의를 통해 개념을 분명히 하거나 수정 또는 보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행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에 체결된 북-미공동선언도 폐기하는 형식이 아니라 무시함으로써 사문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공동선언 2항을 둘러싼 해석 논란은 차제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도 2000년 10월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존하는 남북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우리가 주장하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합제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김일성(金日成) 전 주석이 91년 신년사에서 밝힌 ‘느슨한 연방제’와 유사한 개념.

정부 당국자는 “공동선언 2항은 통일방안이나 통일의 미래상에 대한 합의는 아니다”며 “이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과도 단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6·15 공동선언은 법적인 구속력을 따질 사안은 아니지만, 다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파기는 남북관계 개선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전문가 의견▼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원 차관〓북한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그들이 과거 주장해온 고려연방제의 변종이다. 첫째, 이 연방제는 현실성이 없다. 남북한의 상이한 체제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연방(중앙)정부를 만들어 모든 권한을 행사하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북한은 연방제를 통해 실제로는 남조선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연방제 실시의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적론 철회,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요구조건을 들어줄 경우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과 다름없어 결국 북한이 추구하는 남조선혁명의 여건을 조성하는 결과가 된다. 이 때문에 6·15선언 제2항은 폐기돼야 한다.

또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남측의 연합제는 2개 국가의 개념인 반면 북의 연방제는 단일국가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6·15선언에 대해 북한과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회창 후보가 6·15공동선언 2항 폐기 발언을 한 것은 그 조항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2000년 공동선언에서 처음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용어를 사용했고, 그해 10월 ‘북과 남에 존재하는 2개의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북한이 내용면에서는 이미 우리의 남북연합 쪽으로 접근, 연방제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단지 선전용으로 연방제 용어를 계속 쓸 뿐이다. 따라서 내용도 없는 용어 사용을 이유로 2항 폐기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리가 남북연합 주장을 하는 것은 괜찮고, 북한이 연방제 주장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공동선언 폐기는 절차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마음에 안 들면 새로운 합의를 하거나 7·4남북공동성명처럼 안 지키면 된다. 그러면 자동 폐기되는 것이다. 이 후보의 발언은 즉석 발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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