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대환/´無분규´ 노사 자율로

  • 입력 2002년 5월 2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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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04개의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축제다. 이번 월드컵은 21세기 첫 월드컵이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릴 뿐만 아니라 사상 최초로 2개 국가에 의해 공동 개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기 규모나 TV시청자 수에서 올림픽을 능가하는 월드컵은 주최국으로서는 여러 면에서 국가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호기로 삼을 수 있으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전시용 선언보다 실천 중요▼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월드컵 효과는 다면적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핵심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다.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보다 중장기적인 국가이미지 제고 효과가 훨씬 크고 중요하며, 이는 올림픽을 훨씬 능가한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월드컵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도 투자 소비지출에 의한 단기적인 국내 경기 활성화와 같은 유형의 효과보다는 오히려 국가 홍보와 이미지 제고라는 무형의 파급효과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 경제 재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유리한 시간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면서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살아나고 있으며 그 동안 구조개혁과 제도개선 등으로 재도약의 바탕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시점에서 월드컵을 치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전국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분산 개최를 통해 지역경제의 홍보와 더불어 직접적인 대외 접촉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경제의 세계화와 지방화를 동시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호기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이 단순히 경기 호전이 아니라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이상, 노사관계의 안정적 발전이 반드시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관계의 안정이 한국 경제의 발전에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은 국내외에 널리 공유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용평가기관이 최근 한국 경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서도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강력히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여전히 불안정한 노사관계의 개선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월드컵과 관련해서 기대되는 경제적 효과도 노사관계의 안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 중의 ‘무 분규 선언’을 독려하는 방식은 별로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노사간의 신뢰를 더욱 훼손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노사문제가 꼬여 있으니까 최소한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많이 오는 동안만이라도 자제해 대외적인 이미지를 흐리게 하지 말자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무 분규 선언’의 건수에 집착함으로써 곧바로 역효과로 나타날 위험성에 대해서는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이 같은 특단의 ‘이벤트’보다는 일상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다분히 대립적인 한국의 노사관계를 참여 협력적인 것으로 유도하고 전환시키는 중장기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며 이미 많은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뢰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정책과 기업경영 투명성의 제고와 병행해 노동운동의 과도한 정치화를 제어하면서 합리화를 유도하는 종합적이고도 단계적인 정책 이외에 한국의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묘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그때만 넘기기에 급급한 대책은 문자그대로 대책일 뿐 정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존중관계 일상화돼야▼

‘무 분규 선언’을 끌어내려는 비상한 노력보다는 노사 자율을 존중하고 발휘하는 일상의 모습이 노사관계의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 세계인을 열광케 하는 월드컵 경기의 묘기가 억지로 끌어낸 것이 아니듯, 노사관계도 일시적으로 겉과 끝만 맞추는 방식으로는 진전될 수가 없다. 월드컵의 축제 분위기를 이용해 노동자의 입을 막고자 하는 사용자나 축제에 흠집을 내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자신의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노조가 있다면 이 모두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현재 노사 대다수는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율과 협력의 관계를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김대환 인하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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