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회개하라, 부패와 탐욕을…" '멍청한 백인들'

  • 입력 2002년 5월 17일 17시 57분


에미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
에미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무어
멍청한 백인들/마이클 무어지음 김현후 옮김/336쪽 9500원 나무와 숲

‘부시는 대통령직을 훔친 사람이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타락한 ‘부자 아이들’과 노회한 백인들이 점령하고 있으며, 이들은 가난한 약자들을 보호한다면서 탐욕스런 대기업들이 고혈을 착취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신랄한 반미(反美)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미국의 백인이다. 저자는 텔레비전 시리즈 ‘TV 네이션에서의 모험’으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한 유명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다. 책에는 미국식 특유의 유머와 위트, 독설로 가득하다. 얼핏 보기에는 섬세한 지적인 논리성도 없고 미사여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이 2월말 발매후 한달만에 온라인 도서판매 사이트 ‘아마존’을 포함, 뉴욕타임스 워싱톤포스트 등 유력 신문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8주간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면, 요즘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미국 사회도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현재 미국사회의 제도적인 부조리와 정경유착, 그로 인한 여성과 흑인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을 누가 무엇 때문에 저지르고 있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자의 자기 반성적 시선이 1차적으로 미국과 백인 상류층을 향하고 있지만, 인간이 살고 있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함을 읽을 수 있다.

우리에게 미국적 패러다임은 얼핏 ‘글로벌 스탠더드’로 대치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사실미국도 외국인, 여성, 흑인에 대한 인권문제, 인간이 거세된 사법제도, 기업과 정치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제도와 정경유착, 환경파괴 등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부자집 도련님과 충직하고 노회한 노인들에 의해 점거당했고 거대한 경제는 파이어스톤 타이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람이 빠지고 있으며, 수돗물은 오염되어 있고, 오존층은 거대한 구멍을 내며 커지고 있으며, 다목적 레저용 차량은 재앙의 메뚜기처럼 생산되고 있다.’

저자는 우선 논란이 있는 부시와 고어가 맞붙은 지난번 대통령 선거를 다큐멘터리처럼 세세하게 기록하며 부시를 공박하고 있다. ‘순미국식 쿠데타’라고 이야기하면서 개표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부시와 그의 행정부 관료들의 과거 행적이 어떠했는지 밝히면서 이들을 ‘반란군’으로까지 지칭한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한번 더 주고, 안되면 미국이 이라크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레이저 쇼’를 보여 주자고 비아냥댄다.

저자는 미국의 모든 제도가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고 말한다. 1920년이래 대통령 부통령선거를 21번이나 치렀지만 정당 후보로 여성이 오른 것은 딱 한번밖에 없었고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의석은 13%밖에 안되며 25세∼34세 사이에 이혼하는 여성의 40%는 가난에 허덕인다고 한다. 남성의 평균 수입 1달러에 대한 여성의 수입은 76센트이며 여성이 남성과 같은 액수의 연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16개월을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적인 독설과 함께 예민한 주제를 명쾌하게 다루는 작가의 재주가 함께 느껴지는 책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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