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6…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6)

  • 입력 2002년 5월 9일 18시 46분


무당3 산노미야(三宮)①에서 봤다는 소문을 듣고는 산노미야에 갔고 이카이노(猪飼野)②에서 봤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카이노에 갔다 발가락에 생긴 물집이 터져서 피가 나도록 걸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할배는 일본 여자하고 같이 살고 있었다 신일이란 한 살 짜리 남자애도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버리고 타향 땅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는데 일본 여자한테 남편을 빼앗기다니! 할매는 여자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시뻘겋게 부어오른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가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 눈은 애처로운 사슴같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다 꼭 다문 입술은 고집스러워 보였다 내가 훨씬 더 이쁜데! 내가 자식도 훨씬 더 많이 낳았는데! 그 여자 아까 저기에 숨어 있어서 할매가 쫓아버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년!

우리 손주한테 다가가지마!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안 돼 알겠지! 나와 애들은 그 여자네 집에서 살게 되었다 아이고! 그 여자와 처음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내 가슴에 한이 맺혔다 한은 거미처럼 실을 토해내 내 가슴과 머리에 집을 쳤다 아이고 답답해! 가슴이 답답해! 머리가 아파!

무당은 두 손으로 젖가슴을 움켜쥐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주먹으로 양 허벅지를 두드린다.

박수 나무마하반야 바라밀다…….

무당3 답답해! 죽어서도 한은 이 가슴을 떠나가지 않네 하지만 오늘은 우리 손주를 만났으니 좋구나 좋아 우리 친척들은 많이 왔나?

유미리 저 혼자예요. (다시 말을 고친다) 신철 삼촌이 왔어요.

무당3 아이고 신철아 너는 나를 나쁘게 말할 테지 하지만 일곱 살 때까지 길러준 은혜를 잊었나?

이신철 ……

박수 (북을 두드리면서)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무당3 나는 염불을 들으러 온 것이 아이다 우리 손주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 거야 우리 증손자는 잘 있나?

유미리 도모하루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왔어요.

무당3 아이고 네 번밖에 안아보지 못한 우리 증손자야 도모하루는 내 첫 증손자야

유미리 좀 더 크면 밀양에 데리고 올게요.

①산노미야 - 코베 시 최대의 번화가

②이카이노 - 효고 현의 이쿠노(生野)에 있으며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현재의 지명은 나카가와(中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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