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혜윤/조스팽의 아름다운 은퇴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41분


프랑스 대선의 패배자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65). 조국 프랑스가 58년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투쟁을 탄압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알제리 전쟁 반대운동에 뛰어드는 것으로 처음 정치에 눈을 뜬 지 44년 만에 그는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대선 패배는 ‘자업자득’이었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낡은 사회주의 이론으로는 프랑스 경제를 살려낼 수 없다는 소신하에 재임 5년간 공기업 민영화 등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3%의 성장률에 20여년만의 최저치인 9%의 실업률을 달성했지만 그는 정통 좌파의 지지 기반을 잃었다.

그 결과 1차 대선에서 좌파 후보들이 난립했다. 그가 패배한 것은 극우파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 당수가 잘해서가 아니라 좌파의 표가 분산됐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쉽게 패배했지만 그는 한 점 흠 없이 물러났다. 그는 총리 임기 마지막 날인 6일 총리실 특별자금 276만유로(약30억원)를 국가 예산으로 이월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동안의 특별자금 지출 내용도 상세히 공개했다. 이 자금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호화 여행비, 최고급 식사비 등으로 지출해 논란이 됐던 자금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호화 여행비 논란이 일자 특유의 능란한 변명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에 비하면 조스팽 전 총리의 처신은 투명하다 못해 고지식하기조차 하다. 그의 이런 원칙주의가 대중적 친근감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존 정치인들에게선 볼 수 없는 일관성이 있다. 1차 투표의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3시간 만에 즉각 정계 은퇴를 선언한 그는 “르펜 당수의 득세를 막기 위해 시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라”는 압력을 당내외에서 받았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은퇴를 선언한 순간부터 스스로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끊었기 때문.

그는 기자들이 침묵을 지킨 이유를 묻자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혜윤기자 국제부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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