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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4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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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심포지엄은 재미동포 사업가 양삼영(梁三永·80)씨가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한 성금으로 개최한 것이어서 의미가 더 컸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했던 양씨는 2000년 3월 동아일보사를 찾아와 장학금 100만달러(당시 11억원 상당)을 기탁하며 “불우학생과 나환자 지원, 독도문제 연구사업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기금을 운영하는 동아꿈나무재단은 양씨의 뜻에 따라 사단법인 독도연구보존협회에 매년 1500만원씩 3년간 지원하기로 했고 이 행사가 첫 번째 결실을 본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동아일보와 교육인적자원부 주최로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2001 전국 장애학생 직업기능 발표대회’에서는 전국 89개교에서 정신지체와 시각 및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 590명이 참가해 컴퓨터 요리 재봉 등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이 대회는 부산에서 개업 의사로 활동했던 고 인산 오창흔(仁山 吳昶昕)씨가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한 성금으로 개최됐다.
오씨는 77년 4월 동아일보사를 찾아와 3500만원의 장학금을 내놓으며 동아일보 창간 80주년인 2000년부터 신체장애 학생과 문예창작 진흥사업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청각장애로 고생하다 두 달 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딸(수인·壽仁)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 당시 이동욱(李東旭) 동아일보 사장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오씨는 84년까지 7차례에 걸쳐 3억9700여만원을 기탁했고 현재는 이자가 쌓여 18억2400만원의 ‘큰 자산’이 됐다. 동아일보사는 오씨의 뜻에 따라 2000년부터 장애학생 기능대회를 열었고 ‘인산 문예창작펠로십’을 제정해 2000년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 2명(조경란·김운하)에게 750만원의 장려금을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소설가 김옥채(金玉採)씨가 선정돼 1000만원의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71년부터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된 224명 독지가들의 정성어린 성금은 모두 16억1269만원과 100만달러. 현재 이자가 쌓여 46억여원과 107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이 가운데 지난해 3월 이후 접수된 기탁금은 모두 1억4031만원이다.
동아꿈나무재단에 모여든 224명의 정성은 많게는 10억여원에서 적게는 2만원까지 다양했지만 어려운 인재들을 키워 달라는 뜻만은 한결같았다.
최초로 성금을 맡긴 독지가는 제주 서귀포시에서 감귤농장을 경영하던 현암 오달곤(玄岩 吳達坤)씨. 그는 71년 당시로서는 거액인 100만원을 내놓으며 “창간 100주년인 2020년부터 가난한 영재들을 위해 돈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지난해 1월에는 도무조(都戊祚)씨가 8년 전 간암으로 숨진 아내의 뜻이라며 1억원을 기탁했다. 아내를 ‘그분’이라고 부르는 도씨는 “생전에 가난한 학생의 등록금을 대신 내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그분이 살아 있었다면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2000년 12월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80대 노인이 “넉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생전 소망대로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데 써 달라”며 아내 명의로 5000만원을 맡겼다.
지난해 조성린(趙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