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철강전쟁의 '봉' 인가

  • 입력 2002년 3월 24일 18시 26분


중국이 외국산 철강에 대해 반덤핑조사를 개시하면서 유독 한국산에 대해 가장 높은 덤핑마진을 적용한 것은 부실한 통상외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3월초 미국이 외국산 철강에 대한 보복조치를 발표하기 1년 전부터 철강전쟁은 예상할 수 있었고 이에 대비한 나라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팔짱만 끼고 있다가 당한 꼴이 되었다.

한국산 철강의 덤핑 마진은 5개 피소국 가운데 가장 높은 32.05%인 데 비해 나머지 4개국은 20% 안팎에 그쳤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는 중국 측의 반덤핑 조사기간인 작년 한 해 동안 수출물량을 30만t이나 줄여 이번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한국은 수출물량을 20.4%나 늘려 집중적인 조사대상이 되었다니 통상교섭본부의 안이한 대응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비록 철강수출은 정부의 간섭 없이 수출업체들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미국의 철강업체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머지않아 보복조치를 내릴 것으로 예견되어 왔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달 초 미국이 외국산 철강에 대해 보복조치를 내린 이후에야 내놓기 시작한 정부의 대책을 보면 한국산 철강이 국제적인 ‘봉’이 된 사정에 짐작이 간다. 정부는 즉각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절차만 통상 2, 3년이나 걸려 실익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미 수출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남아수출 확대방안이 제시되었으나 동남아 국가들도 관세를 높이고 있어 한국산 철강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미국의 부당한 보복조치에 의해 촉발된 철강전쟁은 이미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에 이어 다른 나라들도 속속 가세하고 있고 다른 상품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무역전쟁의 와중에서 더 이상 ‘동네북’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대책 마련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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