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24시/별을 단 임원님②]"나홀로 결단" 외로운 승부사

  • 입력 2002년 3월 4일 17시 22분


유통업체 A사의 김모 상무(49)는 임원이 되고 난 이후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부장 때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이런 초(超)긴장감은 자신의 결정이 자기 부서, 나아가 회사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주는 중압감에서 비롯됐다.

‘이 길이냐, 아니면 저 길이냐.’

중요한 선택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그는 ‘머리를 싸매고 고뇌하는 햄릿’이 된다.

“부장 때까지는 대개 위에서 결정해준 걸 그대로 착실히 ‘집행’만 하면 됐다. 하지만 임원이 된 뒤부터는 내 자신이 사업의 향방을 결정지어야 한다.”

☞직장인 24시 연재기사 보기

그런 점에서 임원은 ‘승부사’랄 수 있다. 김 상무는 임원이 되기 전만 해도 그런 결정권자가 되면 얼마나 일할 맛이 날까 하는 부러움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임원이 돼보니 승부사는 ‘스릴 있는 게임’을 즐기는 자리라기보다는 피를 말리고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위치라는 걸 절감한다.

권한이 큰 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 책임은 무엇보다 냉정한 평가라는 형식을 통해서다.

“임원은 정해진 임기가 없는 계약직이다. 내 실적을 1년마다 철저히 평가받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목줄을 내놓고 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차라리 임원을 반납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러나 건설업체 B사의 이모 이사(50)는 승부가 주는 스릴과 긴장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물론 상대회사와 목숨을 건 수주전을 벌일 때마다 ‘오늘이 내 회사 생활 마지막 날’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되는 점에서는 그도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

‘내 결정이 잘못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사표를 안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내가 적어낸 금액으로 입찰을 따냈을 때, 그 희열로 모든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긴장이든, 희열이든 결국 임원은 중간 과정이 아니라 ‘최종 결과’로만 평가받는 위치다. 결과가 나빠도 ‘열심히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정상참작이 되고, 부서장 뒤로 숨을 곳이 있는 부하직원들과는 그 점에서 철저히 다른 처지다.

그래서 임원은 외롭다. 홀로 떨어져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한다.

“과장 부장 때 임원들 방에 가면 골똘히 혼자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요즘 나도 그런 고독을 느낀다.”(김 상무)

임원은 그렇게 ‘군중 속의 고독’을 씹는, 외로운 리더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