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날개없는 추락<2>]갈 길 먼 금융개혁

  • 입력 2002년 2월 25일 17시 48분


“일본은 왜 부실기업을 계속 연명시키고 있나.”

1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美日) 재계회의에서 미측은 일본의 구조개혁 지연을 이렇게 성토했다. 그러면서 부실기업 연명의 대표 사례로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다이에를 지적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그동안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는 것이 구조개혁의 핵심”이라며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는 없을 것임을 누누이 밝혀왔다. 그는 “기존 부실채권은 2년 이내, 추가 발생하는 부실채권은 3년 이내에 최종 처리해 금융불안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이에가 최근 2조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 위기에 몰리자 “충격이 너무 크다”며 금융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UFJ 등 주력 3개 은행은 18일 이 업체에 420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청은 한술 더 떠 1000억엔을 늘린 5200억엔을 요청했다. 그러나 증시에서는 “이번 지원은 더 큰 부실을 키울 뿐”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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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 <1> 가라 앉는 일본호

다이에뿐만이 아니다. 유통 건설업 부동산업 등 3대 부실업종에 대한 끝없는 금융지원은 구조개혁의 원칙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은행들은 건설업체인 다이쿄에 3000억엔을, 후지와부동산에 2000억엔을 지원키로 했다. 은행들은 3월 말 결산을 앞두고 어떻게든 장부상 손실을 줄여보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판만 받고 있다.

부실채권은 금융불안을 부채질하는 ‘메가톤급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원칙대로 부실채권을 포기하고 지원을 끊으면 그만큼 처분 손실액이 생겨 은행의 신용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도산과 대량실업도 우려된다.

이 때문에 부실채권의 처리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夫)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는 “부실채권만 처리하면 경기가 좋아질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은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그렇더라도 더 큰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 부실채권 처리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36조8000억엔으로 6개월 전보다 3조1000억엔(9.5%)이나 늘었다. 은행들은 1996년부터 총 47조엔의 부실채권을 처리해 왔으나 새로 발생하는 증가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출자산을 엄격히 사정할 경우 부실채권 규모는 70조엔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 도산도 잇따라 지난달에는 도산 건수가 지난해 1월보다 19.3% 늘어난 1620건, 부채총액은 10.1% 늘어난 1조672억엔으로 전후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또 2001년도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난해 4월부터 누계로는 1만6552개 업체가 도산했다.

3월 말 결산에서 15개 대형 은행은 6조5000억엔의 부실채권을 처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1조엔 이상을 더 처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증시에선 ‘3월 금융위기’를 의식해 은행주들이 폭락하고 있다. 일부에선 공적자금 재투입으로 위기를 막자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99년 15개 은행에 7조4592억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금융불안을 씻지 못했다. ‘어려워지면 도와주겠지’라며 구조개혁을 망설여 온 금융권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이었다. 금융당국이 공적자금 재투입을 망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실채권 처리가 늦어질수록 일본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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