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왜 불행한가" 보통사람들의 고백 '세계의 비참'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01분


최근에 타계한 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에서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지성이다. 그는 최고의 학자임을 인정받는 콜레쥬 드 프랑스의 종신 교수였으며, 동시에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수식어가 떠나지 않았던 참여적 지식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르디외는 여러 가지 점에서 사르트르와 비교될 만한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두 사람 모두 파리의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철학적 사색을 기반으로 자신의 사상적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외친 보편적 지식인이었다면, 부르디외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행에 대해 구체적 전략으로 대응했던 전문적 지식이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보인다. 사르트르가 문학적 섬세함으로 필명을 전 세계에 알렸다면 부르디외는 실증적 통계자료를 근거로 한 사회학적 엄밀함으로 학자로서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이제 한국어로 번역돼 세 권의 책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부르디외 학문의 실증성과 구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저작이다. 이 책에는 22명의 사회학자들이 3년 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얻은 프랑스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분석과 처방이 제시돼 있다. 이들은 대규모 공영주택 단지, 빈민촌의 학교주변, 사회복지원의 일선 공무원, 노동자들의 가정, 하층 무산계급들의 일상적 삶 등에 밀착하여 그들의 삶이 비참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을 추적하고 조사한 것이다.

전문적인 사회학자들의 공동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993년 출판 당시 프랑스에서 커다란 반향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왜 그랬을까? 이 책에는 직장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는 전직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빈민촌의 학교주변에서 상습절도와 폭력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한 알제리 출신의 이민 2세들, 고아출신의 금속기계공, 정당한 권리가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 집 없는 사람들의 일상 속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르디외를 비롯한 22명의 사회학자들은 일반적인 통계자료나 사회분석의 기법을 넘어서 밀착 인터뷰라는 방법을 통해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불행의 조건과 원인, 그리고 개인들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심도 깊은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자신들이 일상 속에서 겪고 있는 불행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분석해 낸 이 책의 구체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방대한 작업을 추진한 부르디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까지 ‘세계의 비참’에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히 세 부류의 정책집단의 태도가 사회적 불행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첫째는 소위 전문가집단들이다. 이들은 정치가의 주변에서 일종의 정책참모로서 사회문제에 대해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위기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정치계 안에서 인정된 표현의 기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즉, 정치가들이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문제는 이미 정치적 표현의 기회를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TV토론이나 회의장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주제들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둘째는 여론조사나 시청률 또는 인기도의 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결과를 아무런 생각 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다. 언론 내부의 경쟁과 외압 등으로 인해 기자들은 뜨거운 사회문제를 충분히 여과할 시간도 없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주택문제 노사관계 관료주의의 병폐와 같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쉴 새 없이 지적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일반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매체의 보도는 사회문제에서 예외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근본적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셋째는 지식인 집단이다. 오늘날 지식인은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관념 속에 파묻힌 채 주석 달기에 전념하고 있는 이른바 스콜라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학문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면서 지식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 다른 부류는 학문의 과학성을 내세우면서 사회위기를 표현하는 징후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른바 기능주의자들이다. 두 부류의 학자들은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보여주지만, ‘세계의 비참’을 이해하는 데서는 고집스럽게 자기의 ‘방식’과 ‘주장’만을 고집하면서,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는 일에는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결국 사회적 불행이 제대로 이해되고 분석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부르디외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성숙한 자세와 유사하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의 모습을 발견하는 숙련된 의사의 태도로 우리는 사회적 불행의 근원을 새롭게 이해하고 치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선 정치는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서 정책을 마케팅으로 위장하면서 유권자들의 요구만을 만족시키는 차원을 넘어, 민중들의 일상속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은 자신들이 익숙해져 있는 언어를 벗어나서 지식인과 일반대중의 사고와 판단을 도울 수 있는 혁신적 담론을 개발해야 한다.

학계는 겉으로 드러난 허울에만 매달려 스스로를 대단한 학자라고 생각하는 소위 ‘유행학자’의 차원을 극복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논쟁의 핵심을 짚어주고 사회적 불행의 진짜 요인을 찾아낼 수 있어야만 한다.

견고한 학문의 척도에서 평가하면 이 책은 지나치게 서술적이고 묘사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IMF 이후 한국사회에 산적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데 있어 적어도 사회과학이 무관심할 수 없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학자나 지식인은 물론이고 정치가나 언론인 나아가서는 일반대중들에게까지 커다란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저작임에 틀림없다.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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