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獨 타우누스산/"숲과 인간은 하나"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6시 35분


타우누스산의 서리를 맞은 가문비나무숲
타우누스산의 서리를 맞은 가문비나무숲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IYM·International Year of Mountains). 산은 나무와 숲, 물과 맑은 공기뿐만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원의 보고이다. 또한 생물 다양성의 원천이며 휴식과 관광, 레저의 무대로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산은 또한 신앙과 신화, 문화와 예술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유엔이 올해를 ‘세계 산의 해’로 정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환경보전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산림개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 이 행사를 주관하는 산림청과 함께 세계 각지의 산을 찾아가 산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현장 이야기를 매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

▼글 싣는 순서▼

- <1>"숲과 인간은 하나"
- <2>숲은 ‘인간의 간섭’을 싫어한다
- <3>집-사람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

독일 헤센주 타우누스산의 산림관 요르그 슐츠(54)는 요즘 새보다 훨씬 일찍 일어난다. 새벽 5시. 사냥개 루나와 함께 집을 나서 멧돼지떼가 다니는 곳의 사냥막에 올라 기다린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만이 자연 속에 살 수 있다.

근래에 멧돼지가 급격히 늘어나 숲속의 어린 나무를 훼손하고 있어 걱정이다. 천적이 사라지고 숲의 환경이 좋아지면서 동물이 자꾸 늘어난다. 100년 후의 숲을 생각하면 이들 동물로부터 어린 나무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적정 수를 넘은 야생동물은 제거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산림관을 하고 있는 슐츠씨다. 엄마 젖을 먹으면서부터 숲을 배웠다. 그래도 감히 ‘숲이 보인다’라고 말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렸다. 임학을 전공하고 산림관으로 10여년의 연륜을 쌓고 나서야 무슨 나무를 베고 안벨지, 무슨 동물을 제거하고 놔두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따앙!’

어둠이 가실 무렵 숲의 정막이 깨진다. 어슴푸레한 숲 속에서 검은 실루엣이 풀썩 거꾸러진다. 사냥개 루나가 뛰어간다.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햇빛을 볼 수 없다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흑림·黑林)’로 대표되는 독일의 숲. 독일이 세계 최고의 산림국으로 자리잡은 것은 슐츠씨와 같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숲의 전문가가 매년 수없이 양성되며 그들이 산림을 지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독일의 숲 대부분은 천연림이 아니라 인공림이다. 고대 로마인의 정복을 멈추게 했으며 그림 형제가 쓴 동화에 나오는 무서운 마녀가 살던 신비로운 천연림은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남벌돼 200년전쯤에는 거의 95%가 자취를 감췄다. 현재의 숲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엄청난 인간의 노력이 가져온 것이다.

독일의 산림면적은 현재 전국토의 30%인 1800만㏊다. 한국의 65%와 비교하면 국토면적 대비 산림면적은 훨씬 낮다. 기후와 토양여건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나무의 성장일수가 한국은 연간 100일이 넘지만 독일은 50일에 불과하다. 연간 강수량도 600∼700㎜ 정도로 한국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산림부국이 된 것은 오로지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영국인이 훌륭한 공원을 갖고 있듯 독일인은 지금 훌륭한 숲을 갖고 있다. 슐츠씨가 그 일부를 관할하는 타우누스산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숲은 약 5만㏊ 규모다.

독일의 숲은 인공 조림을 한 까닭에 어디를 가나 벌목 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임도(林道)가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산책 승마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타우누스 숲만 해도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아와 휴식을 취한다. 영국인이 공원에서 하는 모든 일을 독일인은 숲에서 하고 있다.독일은 산림면적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지만 숲이 전국에 고루 퍼져 있어 실제 가보면 우리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숲이 도시와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이고 숲과 사람이 그만큼 친밀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훌륭한 숲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끊임없는 관찰과 정확한 치료가 필요하다. 슐츠씨가 오늘도 새벽잠을 설치며 산을 누비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 '숲 유치원' 곳곳에

독일에서는 최근 발트킨더가르텐(Waldkindergarten)이라 불리는 숲 유치원이 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숲의 집’ 관장이자 독일 숲 보호협회(SDW) 사무총장인 게르하르트 스트로벨 박사는 “1993년 처음 등장한 숲 유치원이 최근에는 독일 전체에 80개에 달할 정도로 성행”이라며 “숲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감기에 좀처럼 걸리지 않는 등 자연에 대한 적응력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숲 유치원은 말 그대로 지붕과 벽이 없는 숲 속의 유치원이다. 아이들이 인공적인 유치원 공간에서 벗어나 자연을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숲의 집’ 근처의 숲 유치원. 이 숲 유치원에는 대개 그렇듯이 15∼20명의 아이가 다닌다. 하루 일과가 일찍 시작되는 독일에서 오전 8시면 부모들이 교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온다.

숲 유치원의 하루는 아이들이 모여 손을 잡고 둥근 원을 그리고 아침 인사를 하면서 시작된다. 아침을 먹으러 숲속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하기 좋은 것은 보물찾기. 나뭇가지를 옷걸이 삼아 옷을 걸어두고 그루터기를 식탁 삼아 간단한 빵으로 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선생님이 얘기책을 읽어주거나 자유시간. 반사거울을 사용해 나뭇가지를 관찰하거나 물을 떠와 현미경으로 수중미생물을 관찰하기도 한다.

점심 때가 되면 아침에 모였던 곳으로 돌아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하루를 마친다. 낮 12시경 부모들이 와서 다시 아이를 데려간다. 숲속에는 숲속의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비해 이동식 부스가 마련돼 있을 뿐 다른 시설은 없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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