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텍사스 특급’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7시 44분


지금부터 꼭 10년 전, 그러니까 박찬호가 공주고 3학년 때 얘기다. 당시 프로야구팀 빙그레(현 한화)는 그에게 “우리 팀에 오면 선동렬을 능가하는 투수로 키우겠다”고 제안했다. 그 때만 해도 선동렬은 모든 투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계약금이었다. 괜찮다 싶은 투수면 억대를 호가하는 판에 빙그레가 제시한 금액은 단 2000만원이었으니까. 1000만원만 더 준다고 했으면 갔으리라는 박찬호의 말대로라면 빙그레의 ‘쫀쫀한 씀씀이’가 오늘의 그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볼을 던진 투수는 놀란 라이언이다. 1974년 디트로이트전에서 기록한 시속 162.3㎞를 아직 아무도 넘지 못했다. 투수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났다는 40대 들어서도 8년 전 46세로 은퇴할 때까지 시속 150㎞대의 볼을 뿌렸다. 얼마나 빨랐기에 ‘텍사스 특급’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140㎞만 넘으면 강속구 운운하는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상상조차 쉽지 않다.

▷박찬호는 라이언을 10년이 훨씬 넘도록 우상으로 삼고 있다. 던지기 전 왼발을 유난히 높이 추켜올리는 ‘하이 킥’이 라이언을 빼 닮은 것도 그의 사진을 보며 혼자 연습한 결과다. 미국행을 결심한 이유 또한 라이언을 이을 대투수가 되고 싶어서였다니 박찬호를 미국으로 이끈 숨은 주역이 바로 그인 셈이다. 두 사람은 박찬호가 LA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첫해인 1994년 여름 단 한번 만났다. 그런데도 박찬호는 그 날 들은 한 마디를 아직 가슴속에 담고 산다. “열심히 해라. 끝까지 너를 지켜보겠다.”

▷우연일까. 라이언이 몸담았던 텍사스 레인저스에 박찬호가 입단했다. 벌써부터 현지 팬들은 ‘텍사스 특급’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볼 빠르기로만 따지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여기에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5년 전 라이언과 거의 맞먹는 시속 161㎞짜리 볼을 던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터라 ‘코리안 텍사스 특급’은 결코 지나친 기대가 아니다. 새해에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박찬호, 그는 이제 미국에 온 꿈을 이룬 것인가.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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