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권 공화국' 만들 셈인가

  • 입력 2001년 12월 27일 18시 31분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 장사를 앞다투어 벌이는 모습이 도를 넘어섰다. 서로 이권사업에 마음이 팔려 다른 부처의 사정은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다. 엊그제 열린 당정회의에서는 연간 매출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신형 로토 복권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끼리 이해가 갈려 편싸움을 벌였다.

복권 사업을 총괄적으로 규제하는 곳이 없고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낭비와 혼란이 심하다.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과학기술부 노동부 산림청 중소기업청 제주도 등은 ‘온라인 연합복권’ 사업자 선정공고를 마쳤고 문화관광부는 월드컵 재원 마련을 위한 스포츠 토토 복권 발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로토 복권의 조기 시행을 막으려 한다. 1200억원을 들여 스포츠 토토 복권 단말기를 깐 지 1년도 안돼 로토 복권 단말기를 새로 깔면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복권 발행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이권사업처럼 돼버렸다. 권한이 국무총리실에서 각 부처로 이관된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복권 장사에 나서는 바람에 올 상반기에 8개 부처에서 모두 18종의 복권을 찍어냈다. 복권 발행을 통합 조정할 법규조차 마련되지 않은 판에 사행성이 높은 신종 복권이 발행되면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다.

각 부처는 복권 이익금을 공익을 위해 쓴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공익 목적이 큰 사업이라면 예산에 책정해 국회의 예결산 심의를 받는 것이 바른 길이다. 사행심을 부추겨 서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예외적 한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복권이 여러 곳에서 남발되다 보면 판매실적이 떨어져 사업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복권 발행분의 3분의 2가량이 팔리지 않아 폐기 처분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첨금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당첨금이 60억원, 100억원이나 되는 복권이 나왔다고 하니 사행심 조장 경쟁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청소년들의 사행 행위를 방지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부근에서는 책가방을 둘러멘 청소년들이 500∼2000원짜리 복권을 열심히 긁어대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부 부처는 볼썽사나운 이권다툼을 중단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나 기금은 예산으로 돌려서라도 복권 발행을 줄이고 사업자 선정, 수익금 배분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통합복권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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