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자살테러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12분


목숨을 던져 가며 적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사람뿐이라고 한다. 닭싸움 개싸움처럼 동물들이 성이 나서 반사적으로 대들고 피를 흘리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동물은 싸우다가 그 결과로 죽을 뿐 애당초 죽기로 작심한 것은 아니다. 인간만이 상대를 괴롭히고 복수하기 위해 목숨을 무기 삼는다는 것이다. ‘내’ 몸을 방어하는 본능적 자구(自救) 행위로서가 아니라, 민족 국가 종교 같은 ‘우리’ 의식을 앞세워 최악의 자해(自害)를 택하는 인간이라?

▷가장 영리한 동물이 가장 어리석은 게임을 벌이는 이 역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 해답은 물론 학자의 몫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며,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신념 따위를 지닌 동물이라는 데 실마리가 있는 게 아닐까. 경제학의 ‘파괴적 경쟁’이라는 개념도 힌트가 될 수 있으리라. 내가 절대적으로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적에게 더 상처 입히고 손해를 안길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한다. 그래서 나의 손해는 적의 더 큰 손해를 위해 기꺼이 바쳐진다.

▷뉴욕의 비행기 자살테러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가미카제를 연상시켰다. 가미카제 공격을 당하는 미군은 그것을 ‘바카’(바보)라고 했다. 하늘에서 시속 960㎞가 넘는 속도로 내리꽂히는 ‘인간 미사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는 정도가 아니라 죽기로 작정해 버린 공격. 일본군은 가미카제식의 ‘인간 어뢰’에다 회천(回天)이라 써 붙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 기울어 버린 전세를 뒤집고 하늘로 가라는 부추김이다.

▷이스라엘에서 자살테러가 잇달아 24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팔레스타인측의 테러다. 테러단체는 이것을 순교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죽으면 그 영혼을 70명의 성처녀가 시중을 든다고도 한다. 그래서 12∼15세의 아이들까지도 ‘순교자’가 되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문명의 진보가 경이로운 현대, 로마 교황이 이슬람 사원을 들러 종교간의 화해를 말하는 이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피로 피를 씻는 이 비극적 미망(迷妄)을 깨우쳐줄 해답은 없는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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