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김영진/北의 위험한 ‘대화거부’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18분


미국 정부가 6월 대화의사를 공식 표명하고 계속 북한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은 지금까지 “노(No)”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북한은 6월 이후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여 왔다.

첫째, 미국이 핵, 미사일, 재래식 병력을 의제로 제기하고 있으나 우선적으로 토의해야 할 것은 전력 보상의 문제다. 둘째, 재래식 병력 문제 제기는 북한을 무장해제시키려는 것이며 미군이 먼저 철수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북한의 자주권을 존중해야 하며 북한을 압살하려는 적대정책을 중지해야 한다. 넷째, 이미 양국이 합의한 것을 실천하는 문제부터 토의를 시작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은 적어도 빌 클린턴 정권 말기에 북-미가 합의한 수준까지 회귀해야 한다.

▼"얻을 것 없다" 북-미대화 미적▼

북한은 왜 북-미대화에 소극적일까. 북한으로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양국 현안에 대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의 강력한 입장으로 보아 북한이 원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북한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선 순위가 낮아졌다고 볼 것이다. 또 북한은 국제환경이 자국에 극히 불리하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 중국간의 정상회담이 대미 대화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측면이 있었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테러사건 이후 대미 협조자세를 선명히 함으로써 그러한 정지작업을 통해 확보되었던 북한의 입지가 약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으로 북한은 심각한 안보상의 우려와 경각심을 갖게 됐다.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 논리가 언젠가 북한에도 적용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안보위기감의 고조는 국내 결속 강화를 필요로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교조적 반미 강경노선이 격화되어 온건노선의 대미 협상 의지를 압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정책의 예측불가성, 불안정성, 과격성,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것이 협상전략상 미국에 효과적인 압박수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대상(代償), 특히 미국 입장의 수정 등 실질적인 전제조건을 요구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 2000년 10월 북-미 공동성명에 있는 핵심적 합의사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일정한 양해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응이 늦어지는 것은 정책결정 과정의 경직성에도 원인이 있다. 대미 전략의 재검토라는 안건의 중요성도 신중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거명한 부시 미 대통령의 회의적 발언이 북한의 경직성을 높였다. 북한 매체에 나타난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 공격의 빈도와 강도는 부시 대통령의 김 위원장 관련 발언에 대한 북한측의 분노의 지표이며 그러한 발언들이 그들의 대미 정책 결정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대미 테러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확대되는 추세로 보아 조속한 북-미간의 협의가 필요하다. 이유를 막론하고 대화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입장은 스스로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오히려 미국과의 대화를 거듭해 타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관계개선 제동 걸릴 수도▼

지속적인 대화의 부재는 북-미 상호간의 정확한 인식과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상호 신뢰 구축을 저해하고 북한의 국제사회에의 생산적 참여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또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의 대북 의혹을 증폭시켜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북-미는 각종 통로를 이용해 정식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한 준비작업을 계속해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본 회담을 궤도에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회담은 장기간에 걸쳐 난항을 겪겠지만 대화 부재 상태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위기상황 발생의 위험성은 줄일 수 있다. 내년 한국 내 정치일정 및 대북정책과 관련해 예상되는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상황을 막는 ‘예방외교’의 의미에서도 북-미간의 진지한 대화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김영진(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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