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不實외교 망신外交]잇단 나라망신…한국외교 최악의 해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06분


韓외교 곤혹
韓외교 곤혹
“올해는 한국 외교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 중견 외교관의 탄식처럼 한국 외교가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거듭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파문’을 시작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친 대일외교, 국제적 망신을 산 중국 당국의 한국인 신모씨(41) 처형 통보 논란 등 한국 외교는 처참할 정도로 상처투성이가 됐다. 이를 실책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제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외교는 고사하고 외교적 위기에 입체적으로 대응할 의지와 능력도 상실한 무기력한 ‘아마추어 외교’의 현주소라는 얘기다. 신씨 사건을 계기로 총체적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 외교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대응책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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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신모씨 사형 파문은 현안이 생길 때마다 해명성 미봉책으로 일관하다 빚어진 ‘예정된 사고’였다는데 대해 외교 관계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허둥지둥 외교〓이번 사건을 놓고 외교통상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응은 외교의 ABC도 모르는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미 현지언론에 보도된 처형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던 데다 사태파악도 안된 상태에서 섣불리 중국측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다 우리 실수임을 파악하고 나서야 꼬리를 내리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외교 수준을 드러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주중대사관과 외교부 일각에선 “양국관계에 민감한 사항일수록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신중론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신중론은 “일단 국민여론의 비난을 막아야 한다”는 강경론에 파묻혔고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하는 외교분쟁으로 사건을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차분히 대응하면 미온적이라고 욕하고, 강경하게 나가면 무모하다고 비난하는데…”라며 정치권이나 언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교적 위기 대처에 원칙도 비전도 없기 때문에 비슷한 실수가 되풀이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되풀이되는 실수〓정부가 사태 초반부터 소극적 해명과 섣부른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잇단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고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월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의 보존 강화’라는 문구 때문에 미국의 새 행정부와 외교적 마찰까지 낳을 뻔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외교부는 “‘문제의 문구’는 과거 미국 정부도 동의한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다 급기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미국측에 잘못을 시인하는 발언으로 무마해야 했다.

불과 한달 전 남쿠릴 수역의 한국어선 조업금지 논란이 일었을 때도 외교부는 “일본과 러시아간에 아직 그런 내용의 최종 합의가 없다”는 원론적인 해명만 늘어놓은 채 속수무책이었다.

▽늘상 내놓는 졸속대책〓올 들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강국과의 외교마찰을 빚은 데 이어 이번 중국의 한국인 사형파문으로 대 중국외교까지 문제를 일으키자 외교부는 으레 그랬듯 ‘근본적 개선책’을 제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의 개선책에 기대를 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시스템 혁신 없이는 또다시 그럴 듯한 문구로 포장된 주먹구구식 대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우리 외교 역량을 6·15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각종 국제회의의 성명서나 선언문에 포함시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자구(字句)외교’에만 치중하는 식의 한국 외교 현실에선 요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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