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야구수준 증시수준

  • 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50분


올해 프로야구를 마무리짓는 한국시리즈가 두산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승부를 결정지은 28일 경기는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면서 1점차로 끝나 팬들은 모처럼 야구 보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러나 앞선 5차전까지는 ‘한국시리즈’라는 대회 명칭이 부끄러울 정도의 졸전이었다. 7대 4, 9 대 5, 11 대 9, 18 대 11, 14 대 4라는 스코어만 봐도 알 수 있듯 최고의 팀을 가리는 대회인지 탈 꼴찌 싸움을 벌이는 팀간의 전적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같은 기간 야구팬들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 소식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박스의 김병현이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다는 점 때문인지 팬들은 한국시리즈보다 오히려 더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양쪽 프로야구에 대한 한국팬들의 관심이 옮아가는 모습에서 미국과 한국의 주식시장을 대하는 투자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투자자들은 매일 아침 간밤의 뉴욕 증시 상황을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좋은지를 따지기보다는 인텔, 마이크론, 아마존 같은 미국 기업들의 실적에 따라 투자방향을 정하는 게 어느 새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설기만 하던 미국 기업들의 이름은 게리 셰필드, 숀 그린, 랜디 존슨 같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이름과 더불어 우리에게 친숙해진 지 오래다.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가보자.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야구 수준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박찬호 김병현 같은 ‘미인주’가 한국 증시를 외면한 채 뉴욕 증시에 직상장하고 선동렬 이종범 구대성 같은 ‘우량주’가 외국 증시로 이전을 했다는 얘기다.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가 계속 시드는 것은 선수협 파동 같은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프로야구위원회의 서투른 행정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식시장은 어떨까. 증시를 관리하는 기관들이 한국 증시의 고질적 병폐를 적절히 치유하지 못하고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박찬호나 김병현처럼 미국 증시로 직행하는 기업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투자자들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안방에서도 간단하게 미국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 증시에 상장된 주식도 직접 거래가 가능해진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당장 돈을 빼 미국 일본으로 몰려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몇 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